“나에게 엘리베이터 버튼 양보하는 어른 좋아요”

신발 끈 풀 때 기다려주기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 등
‘좋은 사람’은 거창하지 않아
“장난감 사주기보다 존중을”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린이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이오!”

서울 문덕초등학교에 다니는 안수빈양(11)은 5일 ‘어린이에게 좋은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안양은 지하철에서 다리가 아팠는데 자리를 양보해준 사람이 있어서 고마웠다며 “나중에 저도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양은 이 경험을 그림으로 그렸다.

인천 서흥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어린이는 “나의 이유를 이해해주는 어른”을 좋은 사람으로 꼽아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유아 맞춤 큐레이션 플랫폼 우따따’가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9일까지 진행 중인 ‘어린이에게 좋은 사람 도감’을 만드는 캠페인에 투고된 사연들이다. ‘어린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에 관한 글과 그림을 모아 선정된 아이 이름으로 기부하고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우따따를 운영하는 유지은 (주)딱따구리 대표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해 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린이에게 ‘세상에 나를 환대하는 어른이 더 많구나’라는 점을 알려주고, 어른에게는 ‘아이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우따따는 일상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을 재치 있게 소개한 책 <좋은 사람 도감> 방식을 빌렸다. 어린이가 보기에 좋은 사람의 행동을 모아 도감으로 만들면 어린이는 환대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지난 4일까지 그림엽서와 인스타그램 댓글을 통해 참여한 어린이는 250명, 어른은 70여명이다.

어린이들이 보낸 그림은 색달랐다. ‘칭찬해주는 사람’ ‘날 존중하고 때리지 않는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어른’ ‘가방을 열거나 신발 끈을 풀 때 대신해주기보다 기다려 주는 사람’ 등이 꼽혔다. 유 대표는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거창한 것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더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더 좋은 곳을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은 어린이의 욕구를 납작하게만 보는 어른의 관점일 뿐”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로 ‘내가 누를 때까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려 주는 사람’을 꼽았다. 어린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스스로 해 볼 수 있게 바라봐주는 여유와 관용’인 것 같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이 캠페인으로 어린이 비하·혐오 표현을 지적하는 것만큼이나 ‘어린이를 존중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이 혐오·비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어린이를 존중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사회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갖고서 스스로 판단하게끔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태원 참사, 12·3 불법계엄, 대통령 탄핵, 경북 의성 산불사태 등 주요 사회·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우따따는 어린이 교육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유 대표는 “이태원 참사 뒤 어린이집에서 핼러윈 행사를 다 취소한 적이 있다”며 “그때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 적이 있는데 어린이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행사를 하지 말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어린이가 행동하며 배울 기회를 점점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어린이가 직접 부딪쳐 보고 설명도 듣고 판단해보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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