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즐거움에서 벗어나기 쉬운 청소년기에 당사자의 감정과 언어로 쓰인 청소년 문학으로 아이들에게 오롯한 독서의 즐거움을 찾아 주는 것도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
문학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감정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에 매우 알맞은 통로다. 특히 아직은 서툴지만 진지하게 자신을 탐색하는 청소년기, 문학은 이 시기를 건너는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을 교과서에 실린 지문으로만 만날 때, 문학 자체의 묘미와 즐거움은 흐릿해진다. ‘읽기’의 즐거움에서 벗어나기 쉬운 청소년기, 당사자의 감정과 언어로 쓰인 청소년 문학으로 아이들에게 오롯한 독서의 즐거움을 찾아 주는 것은 어떨까.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청소년의 목소리와 내면을 담아낸 청소년 문학을 모아봤다. 성장의 고통과 회복, 방황과 연대, 용기 등을 전하는 문학의 세계가 ‘나만 이런 걸까?’라는 물음 앞에선 아이들에게 따뜻한 응답이 되어줄 것이다.
‘스파클’(최현진 저·창비)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스파클’은 상실과 회복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유리는 5년 전 사고로 오른쪽 각막을 이식받았지만, 사고 이후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고 유예한 채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기증자의 정체가 궁금해진 유리는 기증자의 지인인 시온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자라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여정은 유리가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탐색과 성장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청소년기의 감정을 찬찬한 눈으로 성찰하는 이야기와 문장들이, 아이들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전해줄 것이다.
‘궤도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전삼혜 저·문학동네)
아득하게 먼 우주 끝에서부터 소행성 하나가 날아오고 있다. 우주공학 최정상에 선 기관이자, 우수한 아이들을 선발해 연구원으로 육성하는 ‘제네시스’에서 소행성 궤도를 바꿔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제네시스의 아이들에겐 부모도, 후견인도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예정된 재앙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려 애쓴다.
청소년 에스에프(SF) 소설이라는 한길을 꾸준히 걸어온 전삼혜 작가의 이 책은 ‘정상성’의 궤도 바깥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다루는 청소년 소설이다. “외롭다고 느끼는 청소년 퀴어들이 ‘이어져 있다’는 감각의 부드러움을 느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주류 밖 청소년에게 따뜻한 연대감을 전한다.
‘너를 위한 B컷’(이금이 저·문학동네)
‘허구의 삶’ ‘알로하, 나의 엄마들’ ‘유진과 유진’ 등 폭넓은 작품 세계로 아동청소년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이금이 작가의 작품이다.
떠오르는 중학생 유튜버 서빈과 영상을 편집하는 친구 선우. 영상 속 서빈은 늘 밝고 당당하지만, 편집자인 선우는 그 뒤에 있는 어색한 표정과 말 못한 장면들을 알고 있다. 어느 날, 삭제된 ‘B컷’들이 실은 사건의 중요한 단서였음을 알게 되면서, 선우는 윤리와 우정,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책은 단순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비판을 넘어서,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는 착각이 타인을 단정 짓게 만들고 서로를 고립시키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 준다. 동시에 열린 마음과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가 얼마나 큰 희망이 될 수 있는지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아이’(R. J. 팔라시오 저·천미나 옮김·책과콩나무)
10살 소년 어거스트는 선천적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우주비행사 헬멧을 쓰고 다니는 아이. ‘아름다운 아이’는 그런 어거스트가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겪는 1년간 기록이다.
주인공 어거스트를 비롯해 어거스트라는 태양의 궤도를 도는 여러 인물을 통해 한 사람의 용기와 주변의 친절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출간 이후 미국에서 꾸준하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대표적 청소년 성장 소설로 자리잡은 이 책은, ‘원더’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책과 영화를 모두 감상해본다면 훨씬 더 풍부한 문학적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러세요, 다들’(전국 중고등학생 89명 저·자토 그림·창비교육)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제작한 학급 문집 1011종에서 선별한 글 94편을 모은 청소년 시집이자 생각 모음집이다. 학교라는 공간, 입시와 미래,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 청소년들이 느끼는 감정을 꾸밈없이 털어놓는다. 기성 작가들의 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청소년 특유의 발랄함과 참신함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자토 작가의 따뜻한 그림은 문장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완해주며, 읽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한다. 진짜 청소년의 목소리를 만나고 싶은 이, 혹은 청소년에게 ‘같은 또래의 말’을 건네주고 싶은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오직 토끼하고만 나눈 나의 열네 살 이야기’(안나 회글룬드 저·이유진 옮김·우리학교)
14살 토끼는 “태어나자마자 후회하기 시작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소년인듯 소녀인듯, 정체성도 성별도 명확하지 않은 주인공 토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온전히 나인 채로 사는 것이 가능한지의 문제다.
‘오직 토끼하고만 나눈 나의 열네 살 이야기’는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나에 관한 연구’의 작가 안나 회글룬드가 펴낸 새로운 그래픽 노블로 10대 청소년들이 공감할 내면을 일상의 언어와 상징적인 이미지로 풀어낸다. 마치 시를 읽듯, 일기를 훑어보듯 만날 수 있는 토끼의 내면세계는 10대 독자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나다움’에 대한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혼란의 시기를 지나는 청소년 아이와 보호자가 함께 읽고 잔잔한 대화를 나눠봐도 좋을 책이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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