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2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류희림 방심위원장 민원사주 공익신고자 공개 기자회견’에서 류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방심위 직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윤석열 정권 언론 탄압의 ‘돌격대장’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마침내 물러났다. 희대의 ‘민원 사주’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더니, 믿었던 국민권익위원회마저 손절하자 마지못해 백기를 든 것이다. 그의 사의 표명을 두고 ‘도주’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3년 9월 초 방심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600여일간 그가 한국 언론 자유에 끼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비판 언론 재갈 물리기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가 저지른 패악질을 잊지 말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의 죄과 못지않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방심위 직원들의 끈질긴 투쟁이다. 윤석열 치하 언론 자유 투쟁의 선봉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민원 사주’ 의혹을 폭로한 방심위 내부고발자들, 그리고 직업적 양심에 따라 ‘입틀막 심의’에 맞서 싸운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심위지부에 시민사회가 수차례 언론 자유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안겨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류희림 방심위 600일은 방심위 노동자들에겐 힘겨운 투쟁의 나날이었던 것이다.
2023년 9월25일, 방심위 내부 게시판에 장문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류 위원장이 인터넷 언론의 기사를 심의하겠다며 만든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개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나 합의도 없이 위원회가 지켜온 심의 원칙을 무시하며 인터넷 언론사까지 일방적으로 심의를 확대하겠다는 ‘가짜뉴스 척결’은 정말 사회적 대의를 위한 것입니까?”
정권 차원의 ‘가짜뉴스와의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었다. 당시 윤석열 정권은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 수사를 무마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비판 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탁동삼 방심위 팀장이 쓴 이 글은 방심위 직원들의 집단 저항의 도화선이 됐다.
이틀 뒤에는 다른 직원이 게시판에 ‘류희림 위원장님, 뉴스타파 인터뷰 인용 보도 안건 심의 왜 회피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제재해달라는 심의 민원 중에 류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 등 사적 이해관계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낸 민원이 다수 발견됐음에도 류 위원장이 계속 심의에 참여하자 이를 비판한 것이다. 위원장 부속실장이 글 작성자의 직속상사에게 ‘인사위원회 개최’ 운운하며 게시글 삭제를 요청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그 뒤에도 가짜뉴스 근절 대책에 따른 언론 탄압 및 검열 논란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방심위 팀장 11명의 실명 의견서(10월6일), 가짜뉴스 심의센터 직원들의 원소속 부서 복귀 요청(11월2일), 평직원 150명이 참여한 ‘가짜뉴스 심의센터 발령 반대’ 서명부 제출(11월14일) 등 집단 반발이 이어졌다. 마침내 12월23일에는 방심위 내부고발자 3명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민원 사주 의혹)으로 류 위원장을 국민권익위에 익명으로 신고했다. 류 위원장이 신고자 색출에 나서자, 이번엔 방심위 직원 149명이 이듬해 1월12일 류 위원장에 대한 신고서를 권익위에 다시 제출했다. 류 위원장의 적반하장식 탄압에 맞서 ‘우리 모두가 공익신고자’라는 취지의 연대 투쟁에 나선 것이다.
권력의 ‘청부심의기관’이 되기를 거부한 대가는 혹독했다. 가짜뉴스 대책에 문제를 제기한 팀장들은 대부분 강등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내부고발자들은 류 위원장의 수사 의뢰로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러는 사이 류 위원장은 권익위에서 면죄부를 받고 연임에도 성공했다.
류 위원장이 펼친 막장 부조리극은 방심위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3월 초, 장경식 방심위 강원사무소장은 국회에 출석해 류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언을 내놓았다. 류 위원장의 동생이 뉴스타파 인용 보도 관련 민원을 낸 사실을 위원장에게 보고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류 위원장한테서 회유성 발언을 들은 사실도 폭로했다. 결국 권익위는 지난달 21일 류 위원장 사건을 감사원에 이첩했고, 나흘 뒤 류 위원장은 사의를 밝혔다.
류 위원장이 물러났지만, 그게 끝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 청산과 정상화의 시간이다. “입틀막의 망령이 다시는 되살아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방심위”(지난달 26일,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성명)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제2의 류희림’을 만나면 언제든 권력의 언론 탄압 도구로 돌변할 수 있는 현재의 방송통신 심의 시스템이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다. 불가역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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