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델 폴라이올로, ‘헤라클레스와 히드라’(Ercole e L\'Idra), 1475년께, 목판에 유채, 17.5×12㎝, 우피치 미술관 |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2300여년 전,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시내 한복판에 두개의 비석을 세웠다. 비석 윗부분에 민주주의를 의인화한 데모크라티아가 시민을 의인화한 데모스에게 왕관을 씌우는 장면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는 주권은 시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을 단번에 드러낸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성상 바로 밑에 새겨져 있던 글귀였다. 바로 에우크라테스가 제정한 그 유명한 ‘반(反)참주법’이었다. 즉, 누구든 참주가 되려거나 그에 동조하거나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전복하려 한다면, 이런 일을 공모하는 자를 살해하는 행위는 무죄라는 내용이었다. 비석 하나는 아레오파고스 법정 입구에, 다른 하나는 민회가 열리던 프닉스 언덕에 세워졌다는데, 이는 시민들과 지도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에게는 관용이 없다는 ‘전투적 민주주의’ 원칙을 똑똑히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살인자를 미리, 그리고 무조건으로 면책하는 것이 과격해 보일 수 있지만, 2천년 넘는 세월을 건너 생각해보면, 이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예방적 사형 선고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현대 민주국가 대부분은 올바르게도 사형제를 지양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최고 수준의 처단을 하겠다는 경고를 날리는 문제의식만큼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고대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독사 머리 아홉개를 잘라낼 때마다 오히려 그 자리에 머리 두개가 더 생겼다는 것처럼 참주만을 없앤다고 해서 그 해로운 사상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진 않는 법이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여덟개의 머리를 불길로 태워버렸고, 아홉번째 불사 머리는 잘라내어 땅속 깊이 묻은 뒤 그 위에 무거운 바위를 올려놓고서야 겨우 그 위협을 잠재울 수 있었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는 두가지 교훈을 얻는다. 하나는 헤라클레스처럼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괜히 위험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애초에 일반 시민부터 정치인과 정당까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심을 갖고 올곧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이렌의 노래에 홀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돛대에 묶었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테두리를 제공하는 법치를 예외 없이 우리 모두가 준수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일단 문제가 발생했으면 불멸의 존재인 히드라와 같은 악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당장의 위협을 종식시키기 위해 반드시 격리와 억제라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최근 진행 중인 한국의 헌정 위기가 히드라와의 싸움과 같다. 먼저 고대 그리스에서 참수되듯 한국에서도 다수 득표로 뽑힌 고위공직자가 대한국민을 배반하여 민주 헌법을 유린하면 대통령이라도 제거할 수 있다는 탄핵제도가 있다. 아울러 국헌을 문란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내란을 일으킨 수괴는 무기징역이나 사형까지 처한다는 형법 조항이 있다. 헌재는 윤석열의 내란 행위에 대한 탄핵안을 전원일치로 인용해 파면 선고를 내림으로써 반민주주의의 독을 내포한 우두머리를 몸통으로부터 격리해 불능하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독사를 땅 깊숙이 묻은 다음 그 위협을 거대 바위로 깔아뭉개야 하는 것이다. 즉, 내란죄에 따른 형사적 책임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나아가 내란에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으로 동조한 기타 독성 머리들도 더 이상 반민주적 독을 뿜어내지 못하게 민주주의의 횃불로 그들을 도편 추방하듯이 정치의 장에서 배척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과오를 반성한다면 이들을 다시 민주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용함으로써 내란으로 입혀진 깊은 상처가 더불어 치유되는 회복적 정의로 민주주의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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