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서 관람객들이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메시아’라는 단어는 ‘기름 부어진 자’라는 의미의 고대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였다. 히브리성서(구약성경)에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신성한 이들에게 성스러운 기름을 부어주는 고대의 관습이 나타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제, 예언자, 그리고 왕이다. 이스라엘 왕국의 초기 군주들인 사울과 다윗은 실제 권력을 얻기 훨씬 전에 신의 명령을 받은 예언자 사무엘에 의해 기름을 붓는 의식을 치렀다. 향기로운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메시아는 신의 선택을 받아 왕이 될, 그리고 신의 백성들을 구원할 운명을 지닌 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예수가 활동하던 1세기 즈음에는 로마 제국과 헤로데 왕가에 저항하는 군사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메시아라 불리기도 하였다. 그것이 그리스도(메시아의 그리스어 번역이다)라고 불린 예수가 정치범으로서 처벌받게 된 까닭이다.
신성한 존재이자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자 미래의 왕을 가리키는 메시아라는 개념은 오늘날 다른 시대, 다른 문화의 비슷한 존재들을 묘사할 때에도 적용되고 있다. 현실의 고통과 모순을 일거에 해결해줄 특별한 지도자에 대한 기대는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넓은 의미의 ‘메시아니즘’에는 몇가지 패턴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가 말하는 ‘신성한 이방인’ 유형이다. 사람들은 통치자가 다른 이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일 수 없다는 직관을 가진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바다를 건너오거나, 야생의 들짐승 사이에서 자라거나, 적어도 머나먼 외국에서 올 필요가 있다. 신성한 이방인에 대한 기대는 비문명 사회나 고대사에서부터 나타난다. 세계의 수많은 건국신화에서 최초의 왕들은 먼 이방에서 도래해 그 땅을 정복하거나 토착세력과 혼인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왕의 가문은 귀족이나 관료 같은 다른 지배 세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어진다.
다른 하나의 패턴은 ‘영웅신화’의 구조다. 영웅신화의 주인공들은 어떤 계기로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 어떤 인물의 삶이 그런 식의 궤적을 그려온 것으로 인식될 때, 사람들은 그가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특별한 지도자가 되리라고 기대하게 된다. ‘신성한 이방인’ 유형과 결합될 경우, 영웅은 고향을 떠난 뒤 이방의 땅에서 돌아오거나 새로운 땅을 차지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메시아적 인물인 ‘진인’이 어릴 때 한반도에서 쫓겨나듯 떠나 외국이나 어딘가의 섬에 머무르고 있다가 언젠가 돌아와 이씨 왕조를 멸망시킬 것이라 믿었던 것도 그런 유형이다.
오늘날 정치적 메시아니즘의 근저에도 그와 같은 신화적 구조가 잠재해 있다. 대의민주정 사회에서 유권자들은 종종 닳고 닳은 전문 정치인보다는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명성을 쌓은 ‘신선한’ 인물에게 표를 던진다. 정당들도 대중의 정치 혐오를 자극하며 그런 ‘이방인’들을 내세우곤 한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오지 않은 변방 출신의 인물에게 감동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의 ‘영웅신화’ 전략도 흔히 사용된다. 사실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영역에 속한 사람이라거나, 극적인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재능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였듯이, 오늘날 정치 엘리트는 심각하게 비정치적인 기준과 범주에 따라 선정되고 있다. 특히 한 사람에게 강력한 권한과 상징성을 부여하는 체제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권을 대행할 대표자가 아니라 메시아적 카리스마를 지닌 왕을 기대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 은폐된 국왕 환상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정치 세력과는 어딘가 다른 새로운 인물이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타파해줄 거라는 기대를 품는다.
그 결과는 종종 파국적이다. 성공한 기업가 경력을 내세운 누군가는 계속해서 자기 돈만 벌려고 하다 감옥에 갔고, 독재자의 신성한 혈통을 내세운 누군가는 엉뚱한 사람에게 권력을 나눠주다 감옥에 갔으며, 특수부 검사 경험으로 기존 정치인들을 혼내주겠다던 누군가는 정말로 국회에 군대를 보내버리는 바람에 곧 감옥에 갈 것이다. 좋은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정치적 메시아니즘에 취약하기 때문에 더더욱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쉽다. 오류를 줄이는 한가지 방법은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줄 편리한 메시아에 대한 환상부터 포기하는 것이다. 다른 한가지 방법은 자기만이 나라를 구원할 수 있다는 자칭 메시아들을 의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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