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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잠수사 사연 묻어 둘 수 없었다”... 전주영화제 눈물바다 만든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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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화제작 ‘바다호랑이’ 정윤철 감독
연극과 영화 경계선에 선 독특한 형식에 눈길
“당초 제작비 100억 원 영화였으나 투자 무산”
“처음엔 1,000만 원으로 촬영, 개봉할 줄이야”


정윤철 감독은 일단 각본에 있는 내용을 영상에 담아보자는 생각만 있었다며 잘 되리라는 확신은 전혀 없었는데 '바다호랑이'가 개봉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사 침 굿프로덕션 제공

정윤철 감독은 일단 각본에 있는 내용을 영상에 담아보자는 생각만 있었다며 잘 되리라는 확신은 전혀 없었는데 '바다호랑이'가 개봉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사 침 굿프로덕션 제공


처음에는 제작비가 100억 원이었다. 수중 장면이 포함되니 큰돈이 들어가야 했다. 투자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소재라 투자를 꺼리는 눈치였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자 투자자들 지갑은 아예 닫혔다. ‘바다호랑이’는 각본에만 존재하는 영화가 될 운명이었다.

‘바다호랑이’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지난달 30일 개막) 주요 화제작 중 하나다. 4회 상영 모두 매진됐다(8일 1회 상영 남음). 극장은 매번 눈물바다가 됐다. 문서 안에 갇힐 뻔한 ‘바다호랑이’는 어떻게 관객과 만날 수 있었을까. ‘바다호랑이’의 정윤철 감독을 지난 1일 오후 전북 전주시 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60평 남짓 공연연습실 빌려 촬영



영화 '바다호랑이'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실화를 극화했다. 영화 속에서는 나경수라는 인물로 나온다. 영화사 침 굿프로덕션 제공

영화 '바다호랑이'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실화를 극화했다. 영화 속에서는 나경수라는 인물로 나온다. 영화사 침 굿프로덕션 제공


‘바다호랑이’는 김탁환 작가의 르포르타주 ‘거짓말이다’(2016)가 원작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 잠수사들이 겪은 일을 담았다. 정 감독은 2년여에 걸쳐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을 극영화 각본”으로 탈바꿈시켰다. “몸을 갈아넣어 각본을 썼으니 너무 찍고 싶었다”고 하나 현실은 냉혹했다. 정 감독은 화상으로 연기 공부를 함께하던 배우들과 어느 날 연극 리딩 공연을 보러 갔다. “배우들이 대사를 읽는 것만으로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리딩 공연처럼 영화를 찍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 감독은 “완전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 방식을 바꿔 초저예산으로 그냥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바다호랑이’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60평 남짓한 공연연습실을 빌렸다. 공간을 분리하는 칸막이 정도만 설치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연극 무대도, 온전한 영화 세트도 아니었다. 소품이라 할 것도 딱히 없었다. 정 감독이 촬영에 직접 나섰고, 조명까지 담당했다. 처음에는 4회차 촬영을 했다. 초기 제작비는 1,0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영화는 잠수사 나경수(이지훈)가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아이들의 시신을 수습한 후 여러 고통에 시달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경수는 돈벌이를 위해 시신 수습에 나섰다는 비난에 시달린다. 경수가 세상의 외면을 받으며 오롯이 홀로 고통을 견뎌내는 모습이 눈물을 부른다. 경수는 고 김관홍 잠수사를 모델로 한다. 정 감독은 “각본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를 믿은 결과”라고 돌아봤다. 그는 “촬영 후 장면들에 맞는 사운드를 넣었다”며 “소리가 빈 공간에 어떤 새로운 존재감을 만들어낸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물의 감정 느끼면 관객이 결핍 채워"



정윤철(왼쪽 두 번째부터) 감독과 배우 이지훈이 1일 오전 전주국제영화제 '바다호랑이' 상영회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영화사 침 굿프로덕션 제공

정윤철(왼쪽 두 번째부터) 감독과 배우 이지훈이 1일 오전 전주국제영화제 '바다호랑이' 상영회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영화사 침 굿프로덕션 제공


영화의 외관은 투박하다. 열악한 상황에서 촬영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10분 정도 보고 있으면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 든다. 인물들의 상황에 공분하고 함께 슬퍼하게 된다. 경수가 물속에서 아이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이 가장 눈길을 잡는다. 배우 이지훈이 홀로 팬터마임하듯이 시신을 안고 유영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현실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는 이 장면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다. ‘바다호랑이’는 영화가 자본과 기술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웅변한다.


정 감독은 “사실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의상이나 소품, 미술은 다 부수적이라 봤고 배우의 감정을 최대한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가장 먼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물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 관객이 알아서 결핍된 공간을 채운다”며 “존재하지 않는 소품을 머릿속에서 만들고 바다가 아니어도 바다라 생각하게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관객 514만 명을 동원한 ‘말아톤’(2005)으로 데뷔했다. ‘좋지 아니한가’(2007)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 ‘대립군’(2017) 등 상업 영화를 꾸준히 연출해 왔다. 정 감독에게는 ‘바다호랑이’의 실험적인 제작 방식이 영화의 본질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정 감독은 “사운드와 연기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며 “ ‘바다호랑이’ 같은 시도를 해볼 감독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다호랑이’의 제작비는 추가 촬영으로 더 늘었다. “생각지도 않던” 개봉(6월 25일)까지 하게 되며 배우들 출연료까지 더해져 제작비는 7,000만 원가량이 됐다. 하지만 원래 예상 제작비 100억 원에 비하면 한참 적은 돈이다. 정 감독은 “100억 원짜리 영화에 담으려고 했던 감정의 70~80%가 이번 영화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0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쓰고도 70억, 80억 원 효과를 본 거잖아요. ‘바다호랑이’가 새로운 모델이 됐으면 좋겠어요.”

전주=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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