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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민이 주인입니다”… 李 따라하는 어느 현직 판사

조선일보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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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다음 날 법원 내부망에는 ‘국민이 주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청주지법 송경근 부장판사. 그는 글에서 “전합 선고 절차는 이례적이고 무리했다”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고 했다. 이 후보가 입버릇처럼 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을 그대로 빌려 대법관 12명이 합의한 판단을 부정한 것이다.

송 판사는 “우리가 가진 재판권은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보았다고 받은 포상이 아니다”라며 “권력자가 준 것도, 변호사가 준 것도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고 했다. 또 “대법원이 대선을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무리수를 뒀다”며 “대법원이 정치에 개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엔 DJ 정치자금 수사와 같이 선거철이 되면 진행 중이던 수사나 재판도 오해를 피하기 위해 중단했다”며 “사상 초유의 이례적이고 무리한 절차진행이 가져온 이 사태를 과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선거 후 사법부가 입을 타격이 수습 가능할 것인지 그저 걱정될 뿐”이라고 했다.

대놓고 ‘여론 재판’을 해야 한다는 현직 법관의 주장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마치 국민 지지율이 가장 높은 후보는 ‘봐주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선거법 재판은 1년 안에 대법원 선고까지 끝내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데도 이 후보 사건은 1·2심에만 2년 6개월이 걸렸다. 증거 조사는 다 이뤄졌고, 사실관계가 달라진 것도 없다. 상고심에선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한 법리 판단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동안 선거법 사건의 ‘신속 재판’을 강조해온 대법원 입장에선 늦출 이유도 없었다.

결국 대법원은 법이 정한 대로, 내부 규정에 있는 대로 이 후보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판사 수가 적다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지연해 왔던 ‘비정상적 재판’을 ‘정상적 재판’으로 돌린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도 그렇게 진행돼야 할 것이다.

송 판사는 글을 맺으며 “국민은 그저 지배 대상이, 재판 대상이 아니다. 우리를 임명한 주인이다. 결국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적었다. 그는 법복을 벗기 전까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라’는 헌법의 명령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게 국민이 법관에게 내린 명령 아닐까.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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