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탁 논설위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많은 국민이 여의도로 향했었다. 역사 속에만 있던 계엄이 발표되는 것에 놀라고, 총을 든 군인이 국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면서도 그곳에 가 역사의 퇴행을 막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명백한 위헌 행위를 놓고도 수사권이 어디에 있는지, 내란 혐의를 넣을지 뺄지 등을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만장일치 파면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재판관 성향을 근거로 4대4, 5대3 등 억측이 난무했다. 아무 일 없었으면 몰라도 됐을 헌재 관련법까지 찾아보고 알아야 나름의 판단이 가능했다.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촛불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대법원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
윤 전 대통령이 직을 잃은 뒤에도 공부를 게을리할 상황은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재판 관련 논란이 복잡한 함수 같은 숙제를 던졌다.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1심은 중형을, 2심은 무죄로 판결이 갈리더니 대법원이 다시 유죄로 뒤집었다. '파기환송'이란 말 자체도 어려운데, 고등법원에서 첫 기일을 15일로 정하면서 대선 전 최종 판결이 내려질지를 놓고 견해가 엇갈린다. 이 대표가 당선될 경우 여러 재판이 계속 진행될 수 있는지에 대한 ‘헌법 84조 문제’까지 대선에 관심 좀 있는 사람이라면 얼추 알고 있을 정도가 됐다. 어쩌다가 한국에선 '재상고 때 이 후보에게 27일이 보장되느냐 안 되느냐' 같은 지엽적 법 해석이 대선 후보가 출마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는 화두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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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법조항 따지는 대선
대대대행 체제에 위기 증폭 곤란
정치권·사법부 차분한 자세 필요
진영 대결 양상에 따라 과거에도 한 달을 앞두고 대선 정국이 요동친 적이 꽤 있다. 1997년 15대 대선 한 달 전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후보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전 총재가 ‘DJP 연합’을 일궜다. 2002년 16대 대선에선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선거일 33일 전 단일화에 합의했으나, 대선 전날 밤 단일 후보로 결정됐던 노 후보 지지 철회 선언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달성됐던 1987년 13대 대선 때는 군사 독재에 항거하던 야권이 분열하면서 여당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이번 대선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치러지고 있다. 지금 국가를 대표하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행의 대행의 대행’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을 놓고 재판관에 대한 위협과 찬반 시위가 기승을 부렸었는데, 지금은 이 후보에 대한 유죄 파기환송을 두고 대법원 앞에서 비난 집회가 열리고 있다. ‘판결을 빙자한 사법 쿠데타’ 같은 거친 발언이 국회에서 생중계되고 “대법원장 탄핵”이나 “개싸움 할 때는 룰 따지는 것 아니다” 같은 표현이 정당과 국회의원 발로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이 단일화 이슈를 마무리 짓고 나면 진영 간 대립은 한층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며 입술을 다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대통령 파면과 야당 대표 출신 여론조사 1위 후보의 ‘사법 리스크’ 재점화 등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무리 없이 치러내는 것이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과 불경기로 인한 삶의 위기 등 주요 민생 현안이 즐비한 상황인 만큼 대선을 거쳐 새로운 리더십을 정비하고 국가적 주요 사안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선거 기간 지지와 반대 의견 표명 등 진영 간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이거나 자칫 불상사가 발생해 정상적인 선거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가 생겨선 안 된다.
이주호 대행이 첫 일성으로 안정적인 선거 관리를 최우선에 두겠다고 한 것은 다행이다. 정치권과 행정부, 사법부 모두 무리 없는 대선 진행에 걸림돌이 되면 곤란하다. 199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여권에서 제기한 이른바 ‘김대중 비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루도록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지시했다. 김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검찰이 수사하게 되면 호남과 서울에서 폭동이 일어나 선거를 치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헌정이 중단되고 대통령 없는 나라가 되기 때문에 수사를 미룬다고 발표하라고 했다”고 소개했었다. 지금은 위기를 키울 게 아니라 수습해야 하는 때다.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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