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9일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김정은이 핵물질 생산 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하는 사진./노동신문 뉴스1 |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한 찬성 여론이 2022년 이후 70%를 넘나들고 있다. 2022년 북한의 군사 도발 횟수가 40회를 넘어서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65발의 미사일 발사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8발이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대가 급락했고, ICBM 위협에 노출된 미국이 비핵 동맹국인 한국을 보호해 줄 건가에 대한 의구심은 급증했다.
문제는 핵무장 실현 가능성이다. 1970년부터 핵비확산조약(NPT) 체제를 유지해 온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은 없다. 한국의 핵무장은 다른 국가들로 도미노 효과를 낳아 NPT 체제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정당’하게 NPT를 탈퇴하여 제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NPT 10조는 “당사국이 자국의 최고 이익이 조약의 주제와 관련된 비상사태(extraordinary events)로 인해 위협받았다고 판단할 경우, 통보 후 3개월 후에 탈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93년 초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할 때 내세운 명분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포함한 미국의 대북 적대 행위,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사찰 요구, 비핵 국가에만 의무를 지우는 NPT의 차별성이었다. 그러나 자의적이고 모호한 명분에 대한 국제적 반발이 거세지자, 북한은 탈퇴를 유보하고 미국과 협상에 돌입해 핵 개발 포기 대가로 경수로 건설을 약속한 미·북 제네바 합의문에 1994년 10월 서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비밀리에 진행한 고농축우라늄(HEU) 핵 개발이 2002년 미국에 발각되자 2003년 1월 NPT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1월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것을 NPT 탈퇴의 명분으로 삼았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핵무기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정당한’ 명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대북 제재의 고삐를 죄었다.
한국은 NPT 10조에 부합하는 두 가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당한 명분을 제시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이 북한 핵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상황이다.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미국이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을 대가로 제재를 완화하고, 핵 군축 협상을 해나가다 북한 비핵화에 도달하기도 전에 북한의 ICBM 포기와 미·북 관계 정상화를 맞바꾼다면, 북한 핵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비상사태’다. 한국의 최고 이익이 ‘북한 비핵화 없는 미북 관계 정상화’로 근본적 위협을 받는다는 점을 회원국들에 설명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을 급속히 축소(retrench)하거나 이 지역에서 퇴각(retreat)하는 상황이다. 주한 미군을 급격히 축소하거나, 주한 미군은 중국 견제에만 집중하고, 대북 억제와 방어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책임지라는 메시지가 공식적으로 나온다면,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형해화(形骸化)하는 것이다. 전진 배치를 통한 중국 견제를 포기하고 본토로 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이른바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 전략으로 바뀌게 되면, 이 또한 우리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다. 한미 동맹은 상징적 수준으로 격하되는 것이고, 북핵 위협에 대한 미 동맹국 보호, 즉 ‘확장 억제’의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한국이 NPT를 탈퇴하고 독자적 핵무장의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제재를 가하는 NPT 회원국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이 진실로 핵무장을 ‘플랜 B’로 삼는다면, 비상사태가 오기 전까지는 NPT 체제를 충실히 따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과 전략을 바탕으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 결단을 내릴 것인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2023년에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충실히 가동해 핵무기 운용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습득하고, 우라늄 농축 능력도 확보해야 한다. 핵무장 이전에 고려할 수 있는 전술핵 배치나 핵 공유에 대한 한미 협의도 끈질기게 진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여론에 편승해 핵무장만을 외친다면, 한국이 ‘제2의 북한’이 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의구심만 증폭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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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고려대 경제기술안보연구원장·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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