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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의 진창길을 빠져나올 힘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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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지난 4월5일 오후 서울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연 ‘승리의 날 범시민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민주주의 승리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지난 4월5일 오후 서울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연 ‘승리의 날 범시민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민주주의 승리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방준호 | 이슈팀장



일단 가보죠. 만나 달라고. 편지라도 남기는 걸로. 누구라도 붙잡아야 할 텐데요.



누구보다 갑갑하고 무거울 현장 기자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끓어 괜히 종용하고 말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2021년 6월부터 파면당한 2025년 4월까지, 마흔여섯달 동안 벌어졌던 기상천외한 사건의 일단이 수사 과정에서 ‘듬성듬성’ 드러나고 있었다. 흔적을 좇아야 했다. 조급함, 혼란, 분노가 한데 얽혀 수선한 마음에 여유가 깃들 자리가 없었다.



왜 이제야, 도리 없이 탄식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한달 됐다. 대선이 코앞이다. 이쯤이면 마땅히 정치의 계절이어야 했다. 회복과 미래를 얘기해야 했다. 전성배씨나 명태균씨 등이 얽힌 기가 막힌 추문, 누가 누구와 어떤 교감을 나누며 12·3 내란사태를 모의했는지 정도는 감이라도 잡은 채 맞아야 했던 5월이다. 그럴 수 없었다. 아는 게 없다. 수사기관의 강제 수사는 이제 갓 첫발을 떼었다. 의혹의 중심에 선 김건희 여사는 단 한번도 출석 조사를 받지 않았다. 뒤죽박죽이었던 수사와 탄핵 과정을 뒤늦게 절감했다.



불평을 좀 더 얹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만 해도 그 순서와 과정만은 납득이 갔다. ‘박근혜·최순실 특검법’ 통과(11월17일), 탄핵소추안 통과(12월9일), 탄핵심판 변론 종결(2월27일), 특검 수사 종료(2월28일)를 거쳐 탄핵(3월10일)에 이르렀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동의한 특검 수사와 탄핵 심판이 맞물리며, 완전하진 않대도 어느 정도 진상 규명과 함께 대통령은 파면됐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책임져야 하며,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가’에 대해 윤곽은 잡은 채로 다음 단계를 생각했다.



볼멘 채 투덜대는 자신을 퍼뜩 깨닫고 나서 불만은 이내 걱정이 됐다. 이토록 강퍅한 마음인 채 ‘좋은 청산’을 지지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엿새째인 지난달 9일, 그러니까 아직 이 뒤죽박죽인 탄핵과 수사 과정을 절감하기 전 한 토론회에서 오간 말들에 꽤 감동했다. 광장을 이끌어 온 단체와 전문가가 모여 ‘12·3 내란 종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토론했다. 종식, 청산이라는 단어의 강렬함에 견줘 전문가들이 꺼낸 말은, 의외로 가차 없는 수사와 단죄가 전부는 아니었다.



궁극적인 청산의 의미는 ‘진상 규명과 반성, 회복’이어야 한다고 했다. 가칭 ‘내란 청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검찰 수사력에만 의존한 적폐 청산이 낳은 후과, 정치적 원한과 보복의 악순환을 숙고한 끝에 나온 이야기들일 터였다. 어느 한편이 칼끝에 선 채 광장에서 터져 나온 민생과 미래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할 자리가 없으리라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좋은 청산은 처벌 너머에 있다고, 적의를 넘어 나아가야 한다고, 추운 광장에서 마음 졸이며 그 고생을 했던 시민들이 이르고 있었다.



그럴 수 있을까. 과거보다 미래, 처단을 넘어선 회복, 적의 대신 통합을 여전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희망이 흐려진다. 가로막힌 특검, 극단적 목소리의 부상, 느긋했던 수사기관은 12·3 내란사태 이후 곧장 드러냈어야 할 수많은 기초 사실을 밝히는 작업을 다음 정부로 미뤘다. 6월3일 이후로도 수사와 처벌은 불가피하고, 국면마다 ‘정치적 보복’이라는 곡해와 원한은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력 야권 대선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가 돌을 하나 더 얹었다. 일찌감치 후보를 정하고 청사진을 이야기하는 조짐이던 야권조차 다시 ‘내란’과 ‘단죄’만 목놓아 외쳐야 할 상황에 내몰렸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든 순간 현명했던 시민들이 진창 속에서도 현명한 길을 또 한번 발견하리라 믿기로 한다. 현재로선 그 수밖에 없다.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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