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展
美 작가 톰 삭스 개인전 개최
‘스페이스 프로그램: 무한대’
연작 200여점 한 자리에 펼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
美 작가 톰 삭스 개인전 개최
‘스페이스 프로그램: 무한대’
연작 200여점 한 자리에 펼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
미국 항공우주국(NASA) 달 탐사 임무 ‘아폴로’의 달 착륙선 모형을 실물 크기로 만든 톰 삭스의 대형 설치 작품인 ‘Lunar Excursion Module(LEM)’(2007). 송경은 기자 |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달 착륙선과 꼭 닮은, 높이 7m의 거대한 우주선이 서울에 착륙했다. 이 모형은 엔지니어나 과학자가 만든 기계가 아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톰 삭스가 가상의 우주 임무를 통해 제작한 대형 설치 작품 ‘루나 익스커션 모듈(LEM)’(2007)이다. NASA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1969년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삭스는 “인류가 달에 간 것은 20세기 최고의 예술 프로젝트였다”고 말한다.
‘LEM’을 비롯한 그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무한대(Infinity)’ 연작은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기술과 우주 탐사를 향한 경외심이자 끝없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열정을 의미한다. 톰 삭스는 일상에서 흔히 쓰는 물건들을 재료로 NASA의 우주 임무를 재치 있게 재구성하면서 인류가 가진 독창성과 욕망을 조명하는 한편, 상품의 생산·소비 같은 추상적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과시욕과 소비 경쟁을 불러 일으키는 ‘나이키’ ‘프라다’ 등 글로벌 브랜드 출신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실험실 가운, 우주 부츠 같은 실용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아이템을 만들면서 오늘날 방탕한 소비에 대한 성찰을 불러 일으킨다.
톰 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연작 200여 점 전체를 한 자리에 펼치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톰 삭스 전(展)’이 오는 9월 7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1관에서 개최된다.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작가의 대표작이자 최신작으로, 국내에서 열린 삭스의 개인전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해당 연작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LEM’과 NASA의 우주비행 관제센터를 모티브로 제작한 퍼포먼스 설치 작품 ‘미션 컨트롤 센터(MCC)’(2007) 등은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다.
톰 삭스(가운데)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 관제센터를 모티브로 제작한 퍼포먼스 설치 작품 ‘Mission Control Center(MCC)’(2007)에서 시연을 준비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
화성 탐사 임무에서 활용되는 로버를 재해석한 톰 삭스의 ‘Mars Excursion Roving Vehicle(MERV)’(2010-2012). 우산과 삽, 빗자루, 톱 등 일상 사물로 만들어졌다. 송경은 기자 |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톰 삭스는 합판, 박스, 테이프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산업 재료를 활용해 대중문화와 기술, 디자인의 상징적인 주요 산물을 브리콜라주(Bricolage∙손에 닿는 대로 아무 것이나 사용하는) 기법으로 정교하게 재현하는 아티스트다. 이번 전시에서도 우주 탐사와 관련된 도구와 실험실, 장치들을 일상 사물로 구현했다. 겉보기로 언뜻 봤을 때는 NASA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작가가 각종 물건을 하나 하나 자르고 붙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는 톰 삭스가 기획한 가상의 우주 임무 시나리오를 토대로 여러 연구개발이 수행되고 있는 하나의 연구소처럼 꾸며졌다. 그 안을 이루는 공간 하나, 소품 하나까지도 전부 삭스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관람객은 무균 실험실에 들어갈 때 필수적으로 거치는 에어샤워 시설을 모사한 작품 ‘로버트 어윈 스크림 클린 에어 룸(RISCAR)’(2012)을 통과해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어지는 ‘Excavation 섹션’에서는 우주에서 필요한 발굴 관련 도구들을 만날 수 있다. 단단한 표면에 구멍을 내거나 암반을 깨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잭 해머와 절단기 등이다.
전시장 한편에 꽂힌 성조기는 톰 삭스 스튜디오가 우주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음을 암시한다. 찬찬히 작품을 살펴보다 보면 비밀스런 기지에 초대된 것만 같다. ‘Astrobiology&Museum 섹션’은 우주생물학 연구실을 방불케 한다. ‘스페이스 프로그램’ 연작을 선보인 네 번의 지난 우주 탐사(전시)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모았다. 진공 챔버 안에는 시험대 위에 바닷가재로 보이는 생물체가 올려져 있고, 누군가 관찰하고 있었던 듯 현미경도 보였다. 벽면엔 운석 샘플로 보이는 형형 색색의 조각들이 진열돼 있고, 샘플 채취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도 공간을 채워 눈길을 끌었다.
우주생물학 연구실을 방불케 하는 ‘Astrobiology&Museum’ 섹션 전경. 송경은 기자 |
톰 삭스가 이번 서울 개인전을 맞아 한글을 새겨넣은 작품. ‘거장들’이라고 적힌 이 샘플 박스엔 박찬욱 감독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이름이 각각 적힌 운석 모형들이 진열돼 있다. 송경은 기자 |
톰 삭스가 최첨단의 과학기술 장비를 재구성하면서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는지 찾아보는 것도 전시의 또 다른 재미다. 어떤 작품은 실제와 비슷하게 작동을 하고, 형태만 따온 것도 있다. 일례로 소형 착륙선 모형은 SLR 카메라의 렌즈 부분을 해체한 뒤 여기에 나무 블록을 덧대 만들었고, 약 1m 높이의 우주발사체(로켓) 모형의 1단은 두루마리 휴지 6개를 쌓아 완성했다. 화성 탐사 임무에서 활용되는 로버를 재해석한 톰 삭스의 ‘Mars Excursion Roving Vehicle(MERV)’(2010-2012)에서는 우산이 안테나 역할을 하는가 하면 삽, 빗자루, 톱, 아령 등이 로버의 후면 구조체가 됐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퍼포먼스 설치 작품 ‘MCC’다. 이 작품은 NASA의 우주비행 관제센터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로켓이 발사되고 우주선이 정해진 궤도에 올라 임무를 수행한 뒤 다시 지구로 복귀할 때까지의 가상 여정이 프로그래밍 돼 있다. 전시 개막일인 지난 25일에는 장장 6~7시간의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을 통해 톰 삭스가 직접 사령관으로 임무를 실시간 진두지휘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가는 가상 임무가 진행되는 동안 49개의 모니터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우주선을 비추며 상황을 전했고, 약 170석 규모로 마련된 객석에서 관람객들이 이를 지켜봤다.
삭스는 “우리의 미션은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라며 “다만 우리가 망가뜨린 지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얻은 자원들을 더 잘 이용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 최초로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의 건축공간에 대해서도 애정을 드러냈다. 삭스는 “DDP는 우주선과 같은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선이 DDP 옥상에 착륙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그 상상을 이번 전시에 담았다”고 밝혔다.
톰 삭스가 우주 헬멧을 브리콜라주 기법으로 재구성한 작품. 송경은 기자 |
SLR 카메라 렌즈 부분을 활용해 만든 톰 삭스의 소형 착륙선 모형 작품. 송경은 기자 |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는 음악과 연극, 미술, 무용, 건축,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문화 아이콘을 선별해 소개하는 현대카드의 문화 마케팅 브랜드다. 29번째로 기획된 이번 톰 삭스 전은 현대카드가 2018년 선보인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위켄드(The Weeknd)의 콘서트 이후 7년 만에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준비 기간만 18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는 설명이다.
전시는 ‘MCC’ 외에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곳곳에 마련해 어렵지 않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된 ‘MERV’ 2대 중 1대는 DDP 뮤지엄 전시1관 복도에서 실제 운행을 하면서 관람객 탑승 이벤트를 벌인다. 또 톰 삭스가 직접 개발한 비디오 게임 작품 ‘루나 랜더’는 오락실에서처럼 유료로 즐길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플레이어는 달 착륙선을 조작하면서 중력과 연료, 속도를 계산해 달 표면에 안정적으로 착륙시켜야 한다. 인류의 도전과 실패, 반복, 계산, 손기술 등을 상징하는 게임으로 게임 속 착륙선이 장애물이 부딪히지 않고 먼 거리에 착륙할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다.
한편 전시장 내 아트샵에서는 톰 삭스의 개성이 담긴 다양한 굿즈도 만나볼 수 있다. 휴대용 현미경, 레이저 줄자, 우주비행사용 칫솔 등 ‘스페이스 프로그램’ 작품 속 우주 탐사 과정에 실제 활용된 도구와 작가가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 등 총 101종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전시 기간 동안 톰 삭스와 글로벌 브랜드가 협업해 제작한 한정판 아이템도 순차적으로 깜짝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톰 삭스(가운데)가 자신의 우주복 작품을 입은 모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대카드 |
최근 미술시장이 차분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기회는 지금이다. ‘아트마켓 사용설명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미술작품을 소비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연재다.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는 물론, 지금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와 눈길을 끄는 전시, 컬렉팅(미술품 수집) 관련 상식까지 다양한 정보를 취재 현장에서 알기 쉽게 소개한다. 이제 막 미술을 접하는 입문자도 이 설명서 하나면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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