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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9〉

동아일보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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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정희성(1945∼ )



격조 있는 시인이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그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 시를 보라. 시선은 깊고, 발견은 핵심을 찌른다.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 없는 것과 아쉬운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고수는 꽃가지나 나무젓가락 하나로도 적을 퇴치할 수 있다. 비슷하게, 숲과 나무와 나와 그대를 가지고 사람의 폐부를 찔러오는 이런 시는 고수의 것이다. 고수란 기술자가 아니라 장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런 장인의 시가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말, 이런 사람,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각자가 너무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각자도생의 우리에게는 말이다.

혐오와 분노, 불안과 배척, 모멸과 질시라는 단어를 우리는 사전의 단어로 배우지 않고 지금 일어나는 현상으로 배운다. 알고 보면 조금씩 착한 구석과 평범한 구석과 웃긴 구석이 있을 사람들이 서로를 낯설게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왜 숲이 아닌가’ 묻는 시인의 질문은 무척 서글프게 들린다. 나는 왜 귀신보다 사람을 무서워해야 하는가. 길거리 모든 현수막을 다 내리고 그 자리에 이 시를 올리면 좋겠다. 모이는 자리마다 다 같이 고민하면 좋겠다. 푸르고 아름다운 숲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숲이 아닌가.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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