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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금은 주권자의 시간, 사법부의 국민 선택 제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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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 후보는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이 걸린 재판이 진행되는 극도의 혼란상이 초래됐다. 민주적 권력 창출 과정에 사법부가 무리하게 개입한 결과다. 내란 사태로 촉발된 국가적 위기 속에 주권자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에 좌우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는 1일 이 후보의 이른바 ‘골프 발언’과 ‘국토교통부 협박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거나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에 관여한 대법관 12명 가운데 10명이 이 같은 다수의견에 동참했고,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허위사실 공표죄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공론의 장에 칼을 들이미는 방식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후퇴시키는 퇴행적 발상”이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선거법으로 후보자의 말을 규제하는 이유는 대법원이 밝힌 대로 ‘후보자의 공직 적격성에 대한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우려’ 때문이다. 즉 주권자의 판단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사법부는 주권자를 대신해 그 말이 처벌할 정도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1심과 2심 결론이 극명하게 갈린 데 이어 대법원에서도 다수·소수의견이 정반대로 갈렸다. 이런 사안이라면 주권자의 판단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다. 그동안 1·2심 재판을 국민들이 지켜봤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은 지금 이 후보가 받는 정치적 평가에 반영돼 있다. 허위사실 공표죄를 확장할 경우 검찰이 선택적 기소로 야당 탄압에 악용할 여지도 사법부는 엄밀히 살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대선이 한달 앞으로 임박한 시점이다.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고도의 정치적 과정이 이미 시작됐다. 특히 이번 대선은 내란을 극복해 조속히 나라를 안정시켜야 하는 비상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여기에 끼어들어 영향을 미치는 건 대의민주주의 원리에 배치된다. 사법부는 주권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사법적 자제를 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서둘러 고작 9일 만에 상고심 선고를 내린 것은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심마저 자초했다. 이런 속도전 속에 충분한 심리가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사심 없는 공정한 판결이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선거법 재판을 조속히 매듭짓겠다는 대법원의 명분과 달리 되레 혼란만 가중시킨 셈이 됐다. 가뜩이나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기묘한 논리로 풀어주는가 하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내란 사태에 침묵을 지키면서 사법부의 헌정·민주주의 수호 의지도 불신받고 있다. 대법원의 무리수로 이제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 신뢰가 없다면 사법부는 존재 근거를 잃는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법원은 사법부의 정도가 무엇인지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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