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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몰이’ 수출한 미 반공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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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은 인물이었다. 가난한 집의 아홉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고학생에 만학도였다. 어렵게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다. 여기까지 보면 입지전적 인물인데, 매카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렸다. 미국은 선거로 판사를 뽑는데, 매카시는 상대 후보 나이가 70대라고 거짓말을 해서(사실은 60대) 선거를 이겼다. 2차 대전 때는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는데, 출격 횟수를 부풀려 보고해 훈장을 탄다. 1946년 선거에 출마해 상대 후보가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고 공격해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는데, 사실 상대 후보는 그때 나이가 너무 많아 전쟁에 나갈 수 없었다.



1949년 중국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고 소련은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이러다 공산주의가 득세하는 것 아니냐?” 미국 사람들은 걱정이었다. 매카시가 그 틈을 파고든다. “내 손에 지금 미국 국무부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이 있다.” 1950년 2월 매카시의 ‘폭로’다. 그러나 매카시는 근거를 내놓을 수 없었고, 그렇게 이 일은 잊히나 싶었다.



그런데 1950년 6월에 한국전쟁이 터진다. 매카시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매카시주의(매카시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매카시는 정부 부처, 할리우드, 학계와 언론계와 노동계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며 ‘폭로’를 이어갔다. 이때 감옥에 간 사람이 수백,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수천이 넘는다.



1954년이 지나며 사람들은 매카시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미국 군대에도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매카시가 주장했지만,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육군 청문회에서 망신을 당한 쪽은 매카시였다. 같은 해 매카시는 상원에서 징계를 당한다. 정치적 몰락이었다. 1957년 5월2일, 매카시는 48살로 죽는다. 실의에 빠져 술을 너무 마셨기 때문.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에서는 금세 잊혔으나 다른 나라로 건너가 수십년 동안 무시무시한 위세를 떨쳤다. 칠레며 아르헨티나며 인도네시아며 한국 사회에서 매카시즘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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