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생대응수석이 지난 2월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24년 합계출산율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미식축구 코치였던 레드 샌더스가 남긴 말은 스포츠의 세계에서 승리가 갖는 중요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승패는 팀과 지도자에 대한 평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일 수밖에 없다.
스포츠의 경우처럼 그 결과가 명확하게 나뉘지는 않지만, 국가의 정책에도 그 성패를 판단할 지표들이 있다. 예컨대 경제성장률, 고용률, 물가상승률 등의 지표는 거시경제 정책의 성적표로 여겨진다.
인구 정책은 어떨까? 한 여성의 기대 자녀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이 단연 대표적인 지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출산율 목표 설정에서 잘 드러난다. 2016년 시행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5년 후 합계출산율 목표치를 1.4로 제시하였다. 정부는 작년에도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 1.0 달성을 정책 목표로 내건 바 있다. 합계출산율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정책 당국자들이 기말시험 성적을 통보받은 학생처럼 일희일비하는 광경도 이 지표의 위상을 반영한다.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면서 출산율 지표를 세심하게 살피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합계출산율이라는 하나의 지표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이를 높이는 데 집착하는 태도는 합리적인 인구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시행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 합계출산율이 인구 정책의 성과 지표로서 갖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 때문이다.
첫째, 합계출산율은 정책의 효과 혹은 성과를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결혼이나 출산은 매우 다양한 사회경제적·문화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개인의 선택을 반영한다. 국가의 정책이 이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 능력은 제한적이어서 계획에 따라 출산율을 ‘조절’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정책의 효과는 다른 사회경제적 변화의 영향으로 상쇄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실제로 좋은 정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되더라도 출산율이 낮아질 수 있고, 정책의 성공 없이 출산율이 높아질 수도 있다. 특히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갖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 교육, 주택, 지역 불균형 등 근본적·구조적 문제를 완화하는 정책적 노력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경로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 성과가 단기적인 출산율 변화에 반영되기 어렵다. 따라서 출산율 지표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경우, 자칫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에 매몰될 우려가 있다.
둘째, 합계출산율은 그 자체로 인구 정책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사회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출산율 하락을 가져온 요인 가운데는 현재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다수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고 후생을 증진하는 변화도 있다. 예컨대 공중보건 개선에 힘입은 영유아 사망률 감소는 ‘예비’로 자녀를 더 낳을 필요를 없앴다. 복지국가의 형성과 확대는 사회적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하거나 자녀를 가질 유인을 감소시켰다.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는 자녀 양육의 기회비용을 높이고, 여럿의 자녀를 낳기보다 소수의 자녀를 잘 키우는 선택을 더 유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출산율 제고 자체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 정책의 타당성을 의심하게 한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어렵게 쌓아온 성취가 출산율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다르게 평가될 수 있을까?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면 이러한 변화의 일부를 과거로 되돌려도 무방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출산율 제고보다는 자녀를 갖는 선택을 가로막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책 목표를 두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는 인구문제 완화에 긍정적일 뿐 아니라, 개인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성과 지표가 필요할까? 중장기적으로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시에 정책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을 반영하는 지표다. 예컨대 많은 연구가 출산의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지적하는 양육과 교육의 경제적·시간적 부담, 일·생활 균형, 주거비용, 일자리의 질과 근로조건, 사회경제적 격차 등을 최대한 투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들을 정책 평가의 기초로 삼는다면,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꾸준히 일관된 정책을 시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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