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
"역시 혜화동 우거(寓居)에서 지낼 때였다. 어느 하룻밤 바커스(Bacchus)의 후예들인지, 유령(劉伶)의 직손들인지는 몰라도 주도의 명인들인 공초(오상순), 성재(이관구), 횡보(염상섭) 주 삼선(三仙)이 내방하였다. 설사 주인이 불주객이란대도 이런 경우를 당하여서는 별도리가 없었을 것은 거의 상식 문제인데, 주인이랍시고 나 역시 술 마시기로는 결코 그들에게 낙후되지 않는 처지로 그야말로 불가무일배주(不可無一杯酒)이었다. 허나 딱한 노릇은 네 사람이 주머니를 다 털어도 불과 수삼 원, 그때 수삼 원이면 보통 주객인 경우에는 3, 4인이 해갈(解渴)은 함 즉하였으나 오배 4인에 한하여서는 그런 금액쯤은 유불여무(有不如無)였다."
변영로의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 중 '백주(白晝)에 소를 타고'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모르는 단어가 몇 개나 될까.
얼마 전부터 문해력 저하를 지적하는 기사를 종종 본다. 대학생조차 불과 100년도 안 된 수필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다. 몇 년 전 박물관의 한 전시실을 담당했는데 선생님 한 분이 레이블에 적힌 제목이 너무 어렵다며 항의 섞인 제안을 하셨다. "이런 단어를 학생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다른 단어를 쓰면 좋겠어요." 지적한 레이블은 '재갈'이었다. 말을 타거나 소를 끌 일이 없는 지금 일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물건이 돼버렸으니 요즘 아이들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과연 재갈을 대체할 쉬운 단어가 있을까. 사전의 정의대로 '말이나 소를 부리기 위해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로 풀어 쓰는 것이 정답일까. 또 재갈은 사라졌다지만 여전히 '입에 재갈을 물리다' 같은 표현이 남아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쉬운 단어의 사용이 화두가 됐다. 특히나 시민사회의 문화적 성취라고 할 수 있는 박물관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박물관은 관람객의 이해를 위해 중학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작성한다. 그러나 설명문을 작성할 때는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다. 전시품의 감상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의 크기 안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자 크기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이때 단어의 선택은 정보량과 난이도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전시를 앞두고 설명카드를 살펴보는데 배의 앞부분, 배의 뒷부분이 나온다. 순우리말로 배의 앞부분은 '이물', 배의 뒷부분은 '고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물' 또는 '고물'로 썼을 때는 전달이 잘되지 않을 듯해 '배의 앞부분' '배의 뒷부분'이라고 쓰기로 했다. 두 글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을 다섯 글자로 해야 한다. 따라서 어느 부분에서는 세 글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수년 전 고대 일본 문화를 전시한 적이 있다. 말을 장식한 여러 말갖춤이 있는데 일본어로는 각각의 명칭이 있는데 우리말에는 그것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고대 일본의 말갖춤은 모두 우리로부터 건너가 그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니 본디 우리도 나름의 단어가 있었을 텐데 남지 않은 것이다. 이물이나 고물 같은 단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훗날 단어의 경제성을 따진다면 이물이나 고물 대신 선수(船首)나 선미(船尾) 같은 한자어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 모른다.
쉬운 단어의 선택은 상대방의 이해를 높이는 데 있다. 즉 '쉬운 글쓰기'의 일부다. 그런 점에서 단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장이다. 쉬운 단어를 열거해도 문장이 바르지 않으면 올바로 전달할 수 없다. '되어진다' '시키다'와 같은 피동이나 사동의 남용, 일본어에서 볼 수 있는 쉼표의 남발은 전달력뿐 아니라 경제성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어휘가 쉬운 글쓰기의 표적이 된 것은 개인의 취향으로 고집할 수 있는 문장보다 더 쉽게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휘력은 부지불식간에 누리는 평생학습이자 한 사람의 연령, 지식, 경험의 거울이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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