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00시간 근무 땐 환각 보여, 130시간 근무는 죽을 뻔"
목숨 걸고 고액 연봉, 커리어 쫓는 월가 2030
지난 8일(현지시간) 촬영된 뉴욕 월스트리트 사진./로이터=뉴스1 |
"이 업계는 '워라밸'(직장생활과 직장 바깥 생활의 균형) 없다. 일이 끝나지 않으면 자는 것을 허락받을 수 없다."
세계 금융의 중심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한 한 20대 여성은 25일 공개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월가는 주 80시간, 많게는 100시간을 넘기는 살인적인 근무환경으로 유명하다.
닛케이에 따르면 월가 투자은행의 1년차 신입 연봉은 지난해 기준 15만8889달러(2억2795만원) 수준이었다. 거액 연봉에 더해 사회 생활 처음부터 미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 CEO(최고경영자)들과 회의하고, 수십억 달러 자금을 굴리는 명예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대가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지난해 5월 뱅크오브아메리카 투자은행 부문에서 근무하던 레오 루케나스가 35세 나이로 심장마비로 숨졌다. 루케나스는 미 특수부대 중에서도 정예로 꼽히는 그린베레에서 근무하다 전역했으나 어린 딸, 아들을 남겨두고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주 100시간 이상 근무했고, 근무시간을 줄이려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루케나스와 대화한 적이 있는 인사 채용 플랫폼의 한 관계자는 루케나스로부터 월가는 원래 주 110시간씩 근무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즈음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트레이더로 근무한 아드난 듀믹까지 불과 25세 나이로 사망하면서 월가 노동문화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이에 월가는 과로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이고 근무시간 관리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부 월가 근무자들은 근무 시간을 줄여서 관리 시스템에 입력했다. 근무시간 제한을 초과하면 인사 부서에서 문제삼기 때문이다. 휴게시간을 확보하려고 근무 시간을 부풀려서 입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국 지난 1월 또 다른 사망자가 나왔다. 월가 투자은행 제프리스에서 근무하던 28세 카터 매킨토시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자택에서 나온 흰색 가루 등을 근거로 약물 과다 복용을 유력한 사망 원인으로 지목했다. 부친은 매킨토시가 주의력결핍증(ADD)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경찰에 진술했는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월가에선 과로를 이겨낼 목적으로 ADD 치료약물을 복용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과거 투자은행 웰스파고에서 근무했다는 한 여성은 동료가 책상에서 약물을 흡입했는데도 "아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커피 5잔 분량 카페인이 담긴 에너지 드링크를 한 번에 들이키는 일도 빈번하다. 제프리스 내부 관계자들 역시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치료제를 복용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근무자 커뮤니티 '월스트리트 오아시스'에서는 더 생생한 증언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월 커뮤니티에 "지금 대학교 3학년인데 월가에서 주당 80시간 넘게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잠을 자면서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답글을 달은 한 이용자는 "주 80시간 근무와 100시간 근무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80시간 근무는 단기간 동안 가능하나, 주 100시간은 환각이 보일 정도"라고 밝혔다. 이 이용자는 "지금은 주 70시간 정도 일하는데 많을 때는 130시간도 일해봤다. 거의 죽을 뻔했다. 월가 일을 하다 몇 명이 죽는다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다"고 했다.
닛케이는 "대형 투자은행의 경우 입사 희망자가 매년 100만명 규모다. 입사 경쟁이 치열하다"며 "많은 근무자들이 고연봉과 명예, 커리어 성장을 목표로 근무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이런 보상들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가 있느냐"고 되짚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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