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
얼마 전, 충북 제천에 글쓰기 강의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모처럼 주말에 아이 없이 홀로 지하철과 기차를 갈아타며, 꽤 긴 시간 여행을 하듯 이동했다. 나는 무심코 스마트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거나 창밖을 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어쩌면 흔한 풍경일 수 있지만, 이처럼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걸 ‘인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져서 주섬주섬 책을 꺼냈다. 요즘 밤마다 몇장씩 읽는 ‘명상록’(2018)을 가져왔던 터였다. 명상록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사색의 기록이다. 빌 게이츠, 넬슨 만델라, 빌 클린턴 등 다양한 인물들이 이 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마침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왔다.
명상록 l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2018) |
“너는 왜 너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냐? 그럴 시간이 있으면 네게 유익이 되는 좋은 것들을 더 배우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고, 아무런 유익도 없는 일들에 쓸데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을 멈추라.”
조금 전까지 온라인 속 세계에서 ‘쓸데없이’ 연예인의 결별 소식 같은 거나 보고 있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에서 본 것들 중 1년쯤 지나서 쓸모 있는 기억으로 남는 건 거의 없다. 릴스나 쇼츠같이 짧은 영상들이 대유행하며, 하루에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가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몇달만 지나도 기억하는 영상은 한두개도 되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빅테크와 인공지능의 시대,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에 뇌가 ‘해킹’당해서 길들어 버렸다. 영상들은 우리가 눈을 뗄 수 없도록, 개별 취향에 최적화된 것들로만 365일 제공된다. 각종 뉴스와 에스엔에스(SNS)도 끊임없는 알림과 새로운 소식들로 매일 우리를 유혹한다. 그렇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쫓다 보면, 일주일, 한달, 1년이 금방 ‘삭제’된다.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살피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이 불행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자신의 정신의 움직임들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지게 된다.”
우리 시대에는 점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에스엔에스를 통해 타인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남들의 삶을 따라가지 못해 느끼는 불안감(FOMO)은 어느덧 보편적 정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너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명상록’을 뒤적이며 도착한 제천의 한 도서관 강의에서 나는 ‘글쓰기’가 우리 시대에 자기를 지키는 법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매일 쓰는 동안은 적어도 남들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스스로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속도와 의지로 책장을 넘기는 일 자체가 ‘나의 정신’을 지킨다. 삶을 전방위적으로 빼앗기고 있는 지금,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 봐야 할 건 손바닥 속 화면이 아니라 그 모든 것에 휘둘리며 울고 있는 내 안의 ‘나’일 수 있다.
작가·변호사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