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l 이상헌 지음, 생각의힘, 1만9800원 |
지난 2022년 미국 대학의 연구진과 세계은행이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로힝야족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에는 현금만, 다른 한쪽에는 현금과 소소한 일자리를 함께 제공한 후 이들의 삶을 추적 관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현금과 일자리를 지원받은 그룹의 정신 건강, 인지능력, 위험 대응 능력 등이 단순히 돈만 받은 그룹에 비해 압도적으로 나은 결과를 보였다. 그 차이는 최대 4배에 달했다. 연구진은 결론 내렸다. “노동은 소득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다른 광범위한 후생적 이유로도 중요하다.”
경제학은 일(work)을 ‘고용’과 ‘실업’이라는 틀에 압착시켜 납작하게 다루지만, 일하는 우리들은 안다. 일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일은 임금보다 훨씬 크고 다층적이다. 단순히 생계의 차원을 넘어 개인의 존재를 지탱하고, 개인을 공동체와 건강하게 연결하는 매개체다.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는 경제학의 프레임에 짓눌린 일을 다시 풍성하게 펼치려고 시도한 책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이상헌 고용정책국장은 애덤 스미스부터 장 티롤(201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까지, 백범 김구부터 며칠 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화까지 동서고금, 경제학과 인문학을 오가면서 일의 의미를 복원하고 규명한다.
지은이는 ‘부재’를 통해 대상의 진짜 의미에 다가간다. ‘실업’을 통해 ‘업’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먼저 일의 문제를 실업률 관리 차원으로만 접근하는 기존 경제학 이론의 맹점을 짚어나간다. 국제기준상 ‘고용’의 기준은 한없이 관대(일주일에 1시간 이상) 느슨하고 ‘실업’의 기준은 엄격하다. 실업률이 과소 추정될 수밖에 없거니와, 이런 접근법으로는 ‘개인과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일자리’를 측정할 수도, 그 의미를 정립할 수도 없다. 지은이는 경제학 개념인 ‘외부성’을 프레임으로, 실업의 부정적 외부성(사망 확률, 자살률, 범죄율을 높임)을 입증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최저임금 때문에 일자리가 줄고, 노동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고루한 통념에 맞서는 새로운 이론도 소개한다.
거의 모든 장에 요약문을 넣었을 정도로 친절하다. 고전·최신 경제학 이론을 두루 다룸에도 고리타분하지 않다. 소설가 정보라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교과서로 쓰면 좋겠다”고 했는데, 고교생뿐 아니라 대선 주자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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