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주니어 한국 온다

[최진홍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이자 '트럼프 제국'의 핵심 인사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트럼프 그룹 부회장)가 대한민국을 방문한다. 미국의 대대적인 관세 부과 움직임과 한국의 정치적 리더십 공백이라는 미묘한 시기에 이뤄지는 그의 방한은 국내 재계에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24일 재계 및 정치권에 따르면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은 오는 28일 한국에 도착해 1~2박의 짧은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이번 방한을 주선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과 10년 가까이 개인적인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암호화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연락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정 회장은 지난해 말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의 초청으로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면담하고 올해 1월 취임식에도 참석하는 등 트럼프 가문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 재계 인사 중 트럼프 가문과 이처럼 직접적인 '핫라인'을 가진 인물은 정 회장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그의 방한을 두고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25%의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가 90일 유예 결정을 내린 직후이며,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에 국정 최고 책임자가 부재한 정치적 불안정 시기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 배경과 의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소한 트럼프 주니어의 또 다른 해외 방문과 이번 한국 방문은 그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사업가 넘어 '트럼프 행정부 막후 실세'로 부상한 인물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트럼프 그룹에 합류, 형제인 에릭 트럼프와 함께 그룹의 부회장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트럼프 그룹의 부동산, 호텔, 골프 사업 전반을 총괄하며 특히 인도의 트럼프 타워나 캐나다 밴쿠버 호텔 등 그룹의 글로벌 확장을 주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단순한 사업가로서의 역할을 넘어선다. 부친의 첫 임기 동안 제한적이었던 정치적 역할이 두 번째 임기 시작을 전후해 눈에 띄게 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주요 직책 인선에 관여했으며,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강력 추천하는 등 부친의 주요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팟캐스트와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지지층과 소통하며 부친에게 그들의 정서를 전달하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도 수행한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그는 미국 행정부 내에서 공식 직책은 없지만, 부친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막후 실세' 또는 영향력 있는 조언자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방문, 정부 관계자 면담 없이 재계 인사 집중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의 방한 목적은 분명하다. 정부 관계자나 정치인과의 공식 면담 일정은 전혀 잡혀 있지 않으며, 오롯이 한국의 주요 재계 인사들을 만나는 데 집중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SK, 현대차 등 국내 10대 그룹 총수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 최고 경영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최태원 SK그룹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류진 풍산그룹 회장) 등이 면담 대상자로 거론된다.

재계가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의 방한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특히 한국 경제의 불안감을 키우는 관세 압박에 대해 행정부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비공식 채널을 확보하려는 절박함 때문이다. 전례 없는 국내 정치적 상황 속에서 정부 차원의 효과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재계가 '기업 외교'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사업과 정치, '트럼프 주니어 변수'의 국제 무대…한국 방문의 특수성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의 국제 활동은 트럼프 그룹의 사업 확장과 부친인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독특하게 결합된 양상을 보인다. 실제로 그의 해외 방문은 종종 명확한 사업적 목적을 띠었지만, 동시에 방문 시기나 만나는 인물을 통해 정치적 함의를 드러내거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트럼프 가문의 사업적 이익과 부친 행정부의 정치적 의제가 뒤섞이는 '하이브리드적' 성격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트럼프 타워 등 부동산 프로젝트 홍보가 주 목적이었다. 현지 개발 파트너들과 함께 사업을 논의하고 잠재 구매자들에게 자신과의 만찬 기회를 제공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인도네시아에서도 MNC 그룹과 함께 추진하는 트럼프 브랜드 리조트 홍보에 집중했다. 이들 사례는 트럼프 그룹의 해외 사업 이익 추구가 핵심 동기였음을 보여준다.

반면, 정치적 배경이 강하게 작용한 방문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세르비아 방문 당시 반정부 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과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

비록 팟캐스트 인터뷰 명목이었지만, 이 만남은 정치적 곤경에 처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재러드 쿠슈너 등 트럼프 가문 측근이 추진하는 베오그라드의 트럼프 호텔 프로젝트와도 연관되어 이해충돌 및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대한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루마니아 방문 역시 대선 재선거를 불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뤄져 비록 공식적인 정부 관계자 면담은 없었으나 정치적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사적인 방문이었지만 논란이 됐던 사례가 있다. 특히 1월 그린란드 방문은 부친의 '그린란드 인수론'이 다시 제기된 시점에 이뤄져 사적인 방문임에도 정치적 도발이나 관심 표명으로 해석됐다. 2019년 몽골 사냥 여행 중 멸종 위기종 사냥 허가 문제가 불거졌고, 대통령을 만나는 등 대통령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다른 방문 사례들과 비교할 때,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의 이번 한국 방문은 그 배경과 성격 면에서 독특한 측면이 있다. 물론 개인적 인맥(정용진 회장)에 의존하고 사업-정치 연관성(무역 갈등)이 존재한다는 점은 공유한다. 그러ㄴ 이 방문은 트럼프 그룹의 직접적인 신규 사업 확장이나 노골적인 정치 개입보다는, 미국의 관세 위협과 한국 내 정치 공백이라는 특수한 위기 상황에 대응하여 한국 재계가 간절히 원했던 '소통 채널 구축' 시도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정부 관계자와의 만남이 배제된 채 오롯이 재계 인사들과의 만남에 집중된 것도 이러한 성격을 뒷받침한다. 이는 비전통적인 리더십 하에서 공식 외교 채널이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때 비국가 행위자(재계)가 개인적인 인맥을 활용하여 중요한 정책 현안에 대응하는 '위기 주도형 기업 외교'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주니어가 미 정부의 막후 실세라는 점에서 다양한 의제가 다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관세 문제는 물론,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 등 현안에 대한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고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탐색을 시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 관계자와의 일정을 다 소화하기도 버거울 만큼 방한 일정이 빡빡한 편"이라며 "국내 정치인들과의 접촉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럼프 주니어 부회장의 방한은 한국 재계가 직면한 현실적인 어려움과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 비공식 채널의 중요성도 다시 한번 부각시킨다. 대통령 가족 구성원이 사업과 정치 영역에서 중첩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행정부와의 관계는 예측 불가능성을 높이며 전통적인 외교 방식을 넘어 비공식 네트워크 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 이후 출범할 차기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안정적인 관계 구축을 위해 공식 외교 라인 강화와 더불어 트럼프 주니어와 같은 핵심 인물과의 비공식 소통 채널 관리 방안도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사업적 논리뿐 아니라 정치적 맥락에서도 면밀히 분석되어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Copyright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