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965년 1월21일 지면. 부랑아 단속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아일보 갈무리 |
“처음에 간 곳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였어요.”
이렇게 말하는 시설 피해자들이 많았다. 1960~1970년대 서울 거리에서 배회하다 단속반에 잡혀오면 먼저 ‘서울특별시립아동보호소’(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갔다. 당시 서울시가 직접 설치·운영한 전국 최대 규모의 공립 부랑아 수용시설인 이곳에 잠시 있던 아이들은 다시 어디론가 끌려갔다. 경기 안산시 선감학원인 경우가 많았고, 부산 영화숙과 형제복지원, 전남 목포 감화원, 강원 대관령 개척지, 제주 천사보육원 등으로도 갔다. 어디를 가나 좁고 더러웠다. 어김없이 강제노역과 구타·성폭력이 기다렸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시설 인권침해의 ‘중간 경유지’였던 서울시립아동보호소 피해자들에 대해 처음으로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은 이 사건을 통해 실제 피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진실화해위는 22일 오후 열린 제106차 전체위원회에서 한 아무개씨 등 19명이 신청한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로 보고 국가에 대해 피해자 및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할 것과 생존자 실태 파악 및 심리·의료·법률 등 실질적인 회복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이 시설에서는 △법적 근거 없는 단속과 입소 △과밀수용과 폭력, 강제노동 △열악한 식생활과 위생·의료 환경 △강제 전원조치와 가족 단절 등의 인권침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동아일보 1962년 2월23일 지면.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내에서 벌어지는 폭행 등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있다. 동아일보 갈무리 |
서울시는 1958년부터 1974년까지 부랑아 근절과 단속을 목적으로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거리를 배회하는 아동·청소년을 부랑아로 간주하여 단속한 뒤, 직접 운영하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응암동 소재)에 수용했다. 1975년부터는 알로이시오 슈월츠(1930~1992) 신부가 운영한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마리아수녀회)에 운영을 위탁했고 마리아수녀회는 경찰과 공무원 등이 단속해 온 아동·청소년을 ‘어린이 마을’(서울시립보호소의 기존 임시대기소)에 수용했다.
진실화해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는 5·16 쿠데타 이후 부랑아 정책에 치안 중심의 접근을 강화했는데, 1975년 긴급조치 5호와 사회안전법이 시행된 뒤에는 내무부가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 처리지침’(내무부 훈령 제410호)을 공포하여, 단속된 부랑인을 무기한 시설에 수용하고 퇴소 이후에도 행정기관의 지속적인 감시가 가능하도록 체계를 구축했다. 이에 기초해 서울시는 ‘무작정 상경자’에 의한 청소년 범죄를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경찰·구청 등과 합동으로 적극적으로 부랑아를 단속했다.
조선일보 1970년 5월8일 지면.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내 수용실에서 악취가 풍기고 아동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일보 갈무리 |
1958년 설립 당시 정원 1000명이었던 서울시립아동보호소는 같은 해 이미 1515명을 수용할 정도로 과밀 상태였고, 1966년에는 수용 인원이 2328명에 달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1975년 마리아수녀회에 위탁 운영이 결정될 당시에도 1684명이 수용돼 있었다. 그러나 1969년 기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의 근무 정원은 총 78명이었고, 실제 아동 생활 지도와 의료를 전담한 인력은 보모 17명, 교도원 2명, 촉탁 의사 2명에 불과했다.
보호소는 과도한 수용 인원으로 관리에 한계가 생기자 통장·실장·조장을 뽑아 질서 유지를 맡게 했으나 이는 수용 아동 간의 폭력과 가혹행위를 용인하는 환경으로 이어졌다. “재래식 변기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아동까지 있었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였다. 구타는 물론 성폭력도 횡행했다. 신청인 이아무개씨는 “보호소 내에서 형들이나 반장으로부터 주로 맞았으며 ‘후장 따먹기’ 라고 하여 반장(또는 형)이 나이 어린 애들을 성추행·성폭행도 하였으나 담당 직원이었던 수녀들도 호실 내의 이러한 행위들을 모두 방임하거나 묵인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이날 전체위에서 ‘목포 동명원 부랑아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김 아무개씨 등 신청인 4명과 미신청 피해자 3명은 제각각 1976년부터 2014년까지 이곳에 수용돼 감금·폭행 및 가혹행위·사망, 강제노역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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