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왼쪽)이 지난 3월8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구속 취소로 풀려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경호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12·3 내란 이후 내란세력에 대한 형사적 단죄 과정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황당한 일은 단연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입니다. 이에 버금가는 일로 검찰이 김성훈 경호처 차장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반려)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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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마약·코로나·스토킹…검찰의 끊임없는 ‘영장 농단’
김 차장은 내란범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물리력으로 막은 중차대한 혐의를 받는데다 누가 봐도 증거인멸 우려가 심각한데도 서울서부지검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이런저런 핑계로 세차례나 기각했습니다. 경찰은 검찰의 이런 조처가 정당한지 묻는 영장심의를 서울고검에 신청했고, 외부인사로 구성된 영장심의위원회가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서부지검은 마지못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는 했지만 영장실질심사에 검사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김 차장 구속에 반대한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입니다.
최근 검찰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혐의 수사와 관련해서도 경찰이 대통령 안가 폐회로티브이(CCTV)와 비화폰 서버 등을 대상으로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을 세차례나 기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이 왜 이렇게 내란세력 수사에 제동을 걸었는지는 앞으로 진상이 철저히 규명돼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영장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2023년 10월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형사2과장이 말레이시아에서 필로폰을 국내로 밀반입한 마약 밀매 조직 검거를 발표하면서 증거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이번 내란 수사가 아니어도 검찰이 석연찮게 영장을 기각하는 일은 많습니다. 백해룡 경정이 폭로했던 ‘마약조직-세관 유착 의혹’ 사건이 한 사례입니다. 인천공항 세관 직원들이 마약조직과 짜고 대규모 필로폰 밀반입을 도왔다는 의혹을 수사하던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지난해 4월 두차례나 세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모두 기각했습니다. 백 경정이 수사 외압 사실을 폭로하고 난 뒤 지난해 10월에야 압수수색이 이뤄졌습니다. 백 경정이 외압 당사자로 지목한 인물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김건희씨와 엮여있는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전 대표가 지난해 7월 공개된 통화녹취에서 승진시켜줄 대상으로 거론한 경찰 고위 간부입니다. 수상한 구석이 한둘이 아닙니다.
또다른 사례. 코로나19로 온나라에 비상이 걸렸던 2020년 대구에서 종교단체 신천지 관련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신천지 쪽이 교인 명단 누락 등으로 방역을 방해하고 있다는 고발이 잇따랐습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지시했지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거부했습니다. 그해 3월 경찰이 신천지 대구교회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두 차례나 기각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무속인 건진법사의 조언을 받고 이런 태도를 보였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검찰은 5월이 돼서야 뒤늦게 신천지 시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습니다.
2022년에는 스토킹·폭행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풀려난 남성이 이틀 만에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남성은 이미 신변보호 조처를 받고 있던 피해자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 체포됐고, 경찰은 구속 필요성이 높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기각한 것입니다.
이밖에도 수사 대상이 검찰과 관련있는 인물이거나 검찰이 어떤 이유에서든 수사를 비틀고 싶은 사안에서 경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영·미는 경찰이 영장 청구, 일본은 검경 함께
영장을 둘러싼 검찰의 막무가내식 농단이 가능한 것은 현행법상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권한이 검사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검사에게 영장을 신청하고 검사가 이를 법원에 다시 청구합니다. 경찰은 독자적으로 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그럴까요?
미국에서는 경찰이 치안판사 앞에 출두해 영장의 필요성에 관해 증언하면 치안판사가 이를 심사해 영장을 발부합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경찰이 이메일이나 전화로 치안판사와 소통해 영장을 발부받는 장면이 영화나 드라마에도 나옵니다. 영장 신청 과정에 검사가 관여하는 경우에도 경찰에 법률적 조언을 해주는 데 그칩니다. 수사-기소 분리가 더욱 철저한 영국에서도 당연히 경찰이 직접 치안판사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압수수색·체포·구속 등 수사상 강제처분은 주요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예심판사의 권한에 속합니다.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 강제처분이 필요해지면 사건 자체를 예심판사에게 넘겨야 합니다. 예심판사는 수색·체포영장 등을 직접 발부할 수 있으며, 구속영장은 별도의 석방구금판사(우리의 영장전담판사에 해당)가 심사해 발부합니다. 독일의 경우 검찰은 수사의 주재자로 규정돼 있지만 자체 수사인력을 갖지 않고 경찰 수사를 법률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래서 독일 검찰은 ‘손·발 없는 머리’로 비유됩니다. 경찰은 강제처분이 필요할 때 검사를 통해 영장을 발부받습니다. 독일 검찰은 우리나라와 달리 경찰과 별개의 수사기관이 아닌 만큼 영장청구권을 악용해 경찰 수사를 방해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체포영장은 검사와 경부(우리나라의 경감에 해당) 이상의 경찰관이 청구할 수 있습니다. 구속영장은 검사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압수수색영장은 경찰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5·16 쿠데타 당시의 박정희 소장(가운데)과 부하들. 한겨레 자료 |
검사의 영장청구 독점은 ‘군사쿠데타 산물’
이렇게 영장청구권자는 각 나라의 형사사법 구조, 특히 수사-기소 분리 정도와 검찰-경찰의 관계에 따라 다양합니다. 각국이 나름의 형사사법제도를 설계하고 발전시켜온 결과입니다. 검사만이 영장청구권을 갖는 건 오히려 예외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입법을 통해 제도를 개선하기도 어렵습니다.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헌법에 못박아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12조 ③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이처럼 헌법에 영장청구권의 주체를 특정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와 그리스, 멕시코밖에 없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수사-기소권의 배분 등 형사사법 구조 전반에 대해선 아무런 규정도 없는데, 지엽적 사안인 영장청구권자만 덩그러니 등장합니다. 기형적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1948년 헌법이 제정됐을 때는 영장청구권자를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기관’으로 통칭되고 있을 뿐입니다.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에도 ‘검사 또는 경찰’이 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제정 헌법 제9조 체포, 구금, 압수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 단 범죄의 현행, 범인의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사기관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후에 영장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
영장청구권을 검사가 독점하도록 한 조항은 1962년 제5차 개정 헌법에 처음 등장합니다.
제5차 개정 헌법 제10조 ③ 체포·구금·수색·압수에 있어 검찰관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 헌법은 박정희 군부세력이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권력을 찬탈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정상적 국회가 아닌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부친 헌법입니다. 이에 앞서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규정한 뒤 이어진 개헌에서 헌법에까지 명시한 것입니다. 이후 이 조항은 박정희 군사독재 치하의 제6차 개헌(1969년)과 제7차 개헌(1972년 유신헌법), 그리고 전두환 군사독재 치하의 제8차 개헌(1980년)에서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역대 최악의 헌법으로 평가받는 유신헌법에서는 ‘검사의 신청’을 ‘검사의 요구’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검찰권의 위세에 더욱 힘을 실어준 표현입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인 현행 헌법(제9차 개헌)마저 이 조항을 유지한 것은 당시 개헌 과정의 중대한 흠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관보다 검사가 중심? 영장주의 본질 훼손
제5차 개헌 과정에서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도입한 배경을 살펴볼 수 있는 구체적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이 독재체제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찰권 강화를 통한 일원적 형사사법 구조를 만들려 한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문이 듭니다. 이와 대비되는 선의의 해석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제5차 개정 헌법이 영장의 발부에 관해 ‘검찰관의 신청’이라는 요건을 규정한 취지는 검찰의 다른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확립시켜 종래 빈번히 야기되었던 검사 아닌 다른 수사기관의 영장신청에 오는 인권유린의 폐해를 방지하고자 함에 있다”(96헌바 28등)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제5차 개정 헌법은 형식적으로도 민주적 절차를 훼손한 채 만들어졌고 내용적으로도 인권보장을 크게 후퇴시킨 헌법입니다. 유독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만 인권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했다고 추론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만약 헌재의 해석이 맞다면 검찰은 인권보장이라는 영장제도의 목적에 누구보다 충실하고, 구속·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필요한 최소한도로 절제하는 인권옹호기관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먼지털기식 수사’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나오는 데서 보듯 검찰이야말로 구속·압수수색을 악용하는 사례가 숱합니다. 심지어 검찰이 청구한 구속·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 극렬하게 반발합니다. 구속영장 발부에 신중을 기하자는 취지로 1995년 구속영장실질심사 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도 검찰은 극구 반대했습니다. 근래 들어 압수수색영장을 심사할 때도 서류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법관이 수사기관 관계자나 제보자 등을 불러 의문스러운 사항을 직접 물어보는 대면심사 제도가 추진되고 있으나 검찰은 이 역시 반대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구속·압수수색에 대한 신중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이런 검찰에게 인권보장을 위한 영장제도의 파수꾼 역할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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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제도의 핵심 주체는 누구보다 법관입니다. 무리한 영장 청구를 통제하는 것은 법관의 고유 권한입니다. 헌재는 앞에 인용한 결정문에서 영장제도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형사절차에 있어서의 영장주의란 체포·구속·압수 등의 강제처분을 함에 있어서는 사법권 독립에 의하여 그 신분이 보장되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지 않으면 아니된다는 원칙이고, 따라서 영장주의의 본질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처분을 함에 있어서는 중립적인 법관이 구체적 판단을 거쳐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야만 한다는 데에 있다.”
이는 만국 공통의 원칙입니다. 외국 헌법들도 영장청구권자는 규정하지 않지만 영장주의는 반드시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에 영장청구권을 독점시키는 것은 오히려 이 영장주의의 본질을 훼손합니다. 검찰이 일차적으로 무리한 영장 청구를 거른다는 미명 아래 법원의 영장심사 역할이 되레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법원을 향해 ‘영장 자판기’라는 비판이 나온 지도 오래됐습니다.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5년 반 동안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려난 사람이 905명에 이른다는 통계, 2022년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이 98.4%(청구 36만1630건, 발부 35만5811건)에 이른다는 통계 등이 그 실상을 보여줍니다. 세간에는 구속·압수수색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가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전도된 영장주의입니다. 여기에는 법원이 불구속 수사 원칙, 강제수사 최소화 원칙 실현에 소홀했던 탓도 있지만, 검찰이 영장청구권을 독점하고 있는 탓도 크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검찰이 영장청구권을 악용해 경찰 수사를 방해하는 사례까지 심심찮게 벌어진다면, 더 이상 영장청구권의 검사 독점을 유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둘러 폐지하는 게 맞습니다. 대신 법원의 영장심사 기능을 더욱 실질화해야 합니다.
‘헌법 제정권자’ 국민의 뜻 다시 물어야
근본적 대안은 헌법에서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을 삭제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영장주의는 헌법에 필수적인 조항이지만, 영장청구권자는 영장주의의 본질적인 사안이 아닙니다. 헌법에 규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헌법은 영장청구권을 누구한테 귀속시킬지보다 더 중요한 수사-기소권 배분에 대해서조차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시대적 요구와 상황의 변화에 맞춰 바꿔나갈 수 있는 입법의 영역인 것입니다.
개헌 전에라도 적용할 수 있는 몇가지 대안도 제시됩니다. 구속·압수수색 관련 지침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경찰이 이를 준수해 영장을 신청했는지 여부만 최소한도로 검찰이 검토하게 하는 방안, 검찰이 경찰 수사를 방해하거나 특정인을 비호할 의도로 영장을 기각할 경우 그 부당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 공수처 검사나 특별검사처럼 검찰청 소속이 아니면서 검사 역할을 하는 이들을 다른 수사기관에도 두는 방안 등입니다(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각국 영장제도 비교분석에 따른 시사점 및 입법론적 대안’).
내란 사태 속에 검찰은 구속과 관련한 막강한 권한을 내란세력을 특별대우하는 데 오용했습니다. 군사 쿠데타의 산물이었던 헌법의 영장청구권 조항이 이번엔 내란세력 비호에 악용됐으니 역사의 유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로 인해 그동안 진지한 검토 없이 유지됐던 이 헌법 조항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깨웠으니 사필귀정이라고 해야겠지요. 이제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의 진정한 뜻을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검찰은 영장청구권을 독점할 자격이 있느냐, 60년 전 군사독재에서 비롯된 이 조항을 그대로 놓아둘 것이냐는 물음입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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