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3일 연설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AFP 연합뉴스 |
늘 가난한 자들의 벗이었고, 평화로운 세계를 꿈꿨으며, 필요할 때 적절한 메시지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알았던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21일 선종했다. 교황이 숨질 때까지 염원했던 것은 우크라이나·가자 전쟁의 종전과 평화의 회복이었다. 교황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끈질긴 대화와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전쟁 없는 세계’를 실현해야 한다.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아침 7시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의 생애는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기관지염으로 지난 2월12일 입원한 뒤 병세가 나아져 지난달 23일 퇴원했지만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전날 부활절(20일)을 맞아 성 베드로 성당에 잠깐 모습을 드러내 “형제자매들, 즐거운 부활절입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 지 불과 하루 만이다. 교황은 이날 대독 메시지에서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이 평화는 없다”고 말했다.
1936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교황은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 사목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축구를 즐겼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하면서 2013년 3월 즉위했다. 최초의 예수회 교황이자 아메리카 대륙과 남반구 출신 교황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아, 청빈의 상징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자신의 새 이름으로 처음 사용했다. 호화로운 관저를 놔두고 일반 사제들이 묵는 숙소에서 청빈을 실천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쟁 없는 세계, 빈부 격차 해소, 기후위기 해결은 교황이 평생 관심을 기울인 주제였다. 2013년 9월 “사회체제의 중심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2014년 8월 방한 때는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라며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발언했다. 껄끄러운 관계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자 “증오 없는 사회를 이끌어달라”고 호소했다.
말년의 그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아직도 진행 중인 ‘두 전쟁’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3주년을 앞두고 “내일은 전 인류에게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사건인 우크라이나 대규모 전쟁 3주년이 되는 날”이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교황의 12년 치세에도 평화는 여전히 우리에게서 멀다. 그가 못다 이룬 꿈을 우리가 이어받아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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