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
허진이 | 자립준비청년
누구나 비밀 하나쯤은 품고 있다. 말하기 어려운 기억이나 감추고 싶은 일들을 마음속에 묻어두며 살아간다. 나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품던 때가 있었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학창 시절, 보육원 밖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을 때 내가 사는 곳을 들킬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생겨버린 나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을 꾸며내기도 했다. 사는 곳과 부모님의 존재를 지어내고, 없던 어린 시절의 시나리오도 만들어냈다. 비밀이 오래 지켜질수록 은근한 쾌감이 있었지만 동시에 친구에게 언제 진실이 들통날지 모른다는 조마조마한 불안이 늘 함께했다.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긴다는 것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마음 한편을 무겁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친한 친구에게 꽁꽁 숨겨오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친구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었고 무엇보다 비밀이 만든 마음의 짐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진실을 터놓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도 했다. 돌덩어리 같은 비밀을 품고 사느라 늘 무겁고 불편했던 내 마음은 비밀을 털어놓으니 바로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친구와 비밀을 나누는 각별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비밀이었던 나의 보육원 생활을 친구에게 털어놓고 오히려 더 가까워졌던 경험은 나에게 비밀을 꺼내놓는 용기의 가치를 일깨워줬다. 이 기억을 발판 삼아 최근에 나의 비밀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나의 첫번째 책 ‘비밀에 기대어’에는 보육원에서 자란 유년 시절부터 자립준비청년으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았다. 지인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털어놓게 된 것은 나의 비밀이 단지 숨겨야 할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나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으로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생겨나고 이를 바탕으로 변화가 생기기를 바랐다.
비밀을 드러내고 가장 먼저 찾아온 변화는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꺼내 보며, 반복되던 내 선택의 이유를 돌아봤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히 알 수 있었다. 또한 감추느라 무겁기만 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면서 마음이 가벼워졌고, 세상과도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결핍과 상처로 남아 있던 과거를 나를 성장시킨 자양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감추고만 싶었던 보육원에서의 생활도 이제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해수욕장에서 자유롭게 놀던 기억, 친구들과 웃으며 춤을 따라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의 즐거웠던 유년 시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기억은 지금의 나에게 ‘내 아이만큼은 외롭지 않게 키워야지’라는 다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바뀌었다.
비밀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감춰야 할 일이나 부끄러운 기억 그리고 비참한 과거로 여긴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안다. 비밀이란 때로는 새로운 가능성이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많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자신의 비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고백을 망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 마음을 나도 알기에,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나다운 삶’이 분명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에 앞서 청년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차가운 시선과 섣부른 판단을 거두고, 청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의 비밀은 더 이상 숨겨야 할 것이 아닌 꺼내도 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마침내 밝힌 자신의 비밀 이야기 속에서 나다움으로 채워진 자신만의 삶이 피어오르기를 바란다. 나와 같은 비밀을 품고 사는 수많은 청년들이 그 안에 숨겨진 가능성과 힘을 믿고 작은 용기를 내보기를 응원한다.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