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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하시어 정성 받으소서"…종묘 정전으로 돌아온 왕의 신주

SBS 유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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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만에 수리 마친 종묘 정전 고유제


"바라옵건대 강림하시어 작은 정성 받으소서".

일요일인 어제(20일) 오후 서울 종묘 정전(正殿),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신 정전 19칸의 문이 오랜만에 활짝 열렸습니다.

각 신실에서 신주를 덮고 있었던 함을 열었고, 헌관(獻官·잔을 올리는 제관)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절한 뒤 왕과 왕비께 향을 3번 올렸습니다.

천상의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시기 위한 예입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실마다 잔을 올린 제관들은 약 5년에 걸친 보수 공사를 모두 마치고 신주 49위가 무사히 돌아왔음을 널리 알렸습니다.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상징하는 정전의 '주인'이 약 4년 만에 환안(還安·다른 곳으로 옮겼던 신주를 다시 제자리로 모심)하는 순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국보인 종묘 정전이 오랜 기다림 끝에 20일 공개됐습니다.

지붕을 덮고 있던 기와를 전통 기법을 살린 수제 기와로 모두 교체하고, 정전 앞 시멘트 모르타르를 제거하는 등 5년에 걸친 대규모 공사를 마친 모습으로입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이날 열린 준공 기념식에서 "다시금 성스러운 기운으로 가득 찰 이 공간에서 우리는 그 뿌리와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왕의 신주'가 돌아오는 여정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날 오후 2시 창덕궁 금호문을 출발해 광화문, 종로를 거쳐 종묘로 이어진 환안 행렬에는 시민 200명을 포함해 약 1천100명이 참여했습니다.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인 신연(神輦)과 신여(神轝), 제사에 사용하는 향로 등을 운반하는 향용정(香龍亭) 등 28기의 가마가 도심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행렬을 배경으로 한 채 '셀카'(셀프 카메라)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금호문 일대에서 행사를 보던 이 모 씨는 "155년 만에 열리는 행사를 보러 일부러 찾아왔다. 우리 옛 전통과 문화를 되살린 모습이 웅장하다"고 벅찬 감정을 표했습니다.

'귀한' 행차를 할 수 있었던 건 선조들의 기록 덕분입니다.

헌종(재위 1834∼1849) 대인 1835∼1836년에 종묘를 증축한 과정을 정리한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宗廟永寧殿增修都監儀軌)에는 이안과 환안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조선 왕실은 종묘에 있던 신주를 경희궁에 이안(移安·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심)했다가 정전과 영녕전 공사가 끝난 뒤 다시 옮겼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인원은 2천84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궁능유적본부 측은 "가마를 모두 제작할 수 없기에 신여, 향용정, 신연 각 1대를 제작하고 나머지는 기존 가마를 수리하고 빌려 28기를 확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오늘날에 맞게 행사 규모를 조정하되, 시민 행렬단과 함께 약 3㎞ 구간을 함께 행진하는 방식으로 의례를 재현했습니다.

한국에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행렬단에 참가했다는 호주인 제임스 그리마 씨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알게 돼 즐겁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7살 딸과 함께 행사를 본 박 모 씨는 "우연히 나들이 나왔다가 행사를 봤는데 아이가 좋아했다"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행사가 더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종묘 정전에서는 특별 공연도 펼쳐졌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종묘 정전을 배경으로 외벽 영상(미디어 파사드)과 조명을 활용한 무용 공연을 본 참석자들은 눈앞의 순간을 놓칠까 사진을 남기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조선 왕실의 신주가 정중히 모셔지고 위엄과 품격이 온전히 되살아났다"며 "종묘가 우리 삶 속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하며 그 가치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올해는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묘는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1997년 우리나라의 첫 세계유산이 됐으며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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