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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보는 일'의 소중함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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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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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출판사에 보내 놓고 '호밀 밭의 파수꾼'(1951)을 읽었다. 이 소설은 스무 살 때 대학의 교양영어 시간에 처음 읽었는데 시험공부 삼아 읽는 바람에 맛을 몰랐다. 서른이 넘어 이 소설이 대단히 오래도록 사랑받는 성공작이라는 생각에 다시 읽었는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다. 열 여덟 살인 콜필드가 기숙학교에서 세번째로 퇴학을 당하고 이틀 동안 뉴욕의 집으로 가며 겪는 일들이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유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명작이구나" 혼잣말을 했다. 이 친구를 싫어하고 저 친구와 싸우고, 늙은 선생님이 고맙지만 혐오하고, 여인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껴 유혹하고, 매춘부에게 사기당하고, 호텔 보이에게 얻어 맞고, 여친과 멀어지고, 명문대 친구에게 퇴짜 맞고, 마침내 어린 아이의 순수한 사랑에 뭉클해하는 이야기. 해방과 구원을 엄숙하게 말하진 않지만 굴레를 벗어나려는 반항아의 갈망이 살아 있었다.

몇 해 전 '보헤미안 랩소디'도 '다시 보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는 말에 객석에 다시 앉았는데 역시 '이게 내가 본 영화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프레디 머큐리가 게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어서 귀부인용 털 코트나 쫙 붙는 스키니 바지를 입고 나오는 장면이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달려오는 관광버스를 향해 날아가는 카메라가 앞창을 그대로 통과해 녹초가 된 퀸 멤버들을 보여주고는, 뒤창까지 통과해 퀸이 열창하는 스테이지를 곧장 보여주는 과감한 씬 연결이 신비하게 보였다. 드럼에 동전들은 물론이고 맥주까지 뿌려 두들기는 장면이나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열창하는 머큐리를 옆에서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옛 애인 메리의 눈동자가 클로즈업되는 장면도 새로웠다. 그러면서 '아, 이것은 정말 심혈을 기울인 명작이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종종 영화나 소설을 두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방인'과 '안나 카레리나', '손자병법'과 '도덕경'을 나이 들어 다시 읽으면서는 '아, 내가 정말 어려서 이 책들이 무얼 말하는지, 참 맛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채로 읽었구나'하는 탄식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두 번 보는 것'이야말로 지겨운 일이 아니라, 내 안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는 체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마음이 바빠 '두 번 보는 일'을 소홀히 해왔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게 서글프거나, 가끔 눈 앞이 캄캄할 만큼 절망적이던 내 소년시절과 고달팠던 청춘도―아니 지금까지의 내 인생 전부도 다시금 고스란히 살아본다면, 그때는 느끼지 못한 기쁨과 슬픔과 놀라움과 신비로움이 숨겨진 것을 찾아내지 않을까. 그런 디테일과 숨은 의미를 발견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잠시 상상에 빠져 흐뭇해 지다가―삶이 오로지 한 번 뿐이어서 두 번 보는 일은 소중한 체험이고 귀한 인연이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권기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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