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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의 문화산책]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조선일보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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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414인의 ‘탄핵 성명’ 모두 읽어
정치적 의견 피력은 자유지만
“동참 안 했다” 이유로 공격해서야
‘보편적 가치’ 침해하는 폭력일 뿐
작가 414인이 발표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한 줄 성명’을 모두 읽었다. 어떤 정치적 의견을 내든 표현의 자유를 가진 시민의 정당한 권리겠지만, ‘작가’들이 무리 지어 글줄을 펼쳐낼 때는 촌철살인의 필력과 재치를 기대한다. “못 쓴 소설 같은 현실 덕분에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 못했고, 거리로 내몰린 국민은 집단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라는 소설가 O와, “진짜 같은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지, 소설 같은 일이 진짜 벌어지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라는 소설가 Y의 글은 작가다운 토로로 읽혔다. 이 외에 “파면을 원한다”는 평이한 단문이 다수였고, 순진한 인식과 날것의 거친 문장도 이따금 눈에 띄었다.

오늘날 지식인과 전문가 집단의 권위는 와해되었다. 작가들 역시 탁견과 혜안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다. 광장이나 소셜미디어에서 ‘1인분’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 씁쓸한 진실을 확인시킨 듯한 ‘성명’이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명단에 올라있었기 때문인데, 정작 그의 문장은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는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며 ‘파면은 보편적 가치’라고 썼다. 일부의 공격 대상이 되는 ‘해전사(’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머무른 역사관에 대한 시비를 차치하고, 어쨌거나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일무이한 한국 작가다. 비록 이런 표현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국민 작가’로서, 갈등과 분열로 상처 받은 국민과 독자들을 포용하며 위로하길 바랐다. 절반의 환호가 아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작가가 한국 문학에도 한 명쯤 있어 주기를. 그런데 혼돈 속에서 논란 중인 사안에 ‘보편적 가치’를 들이대는 무리수 또한 그의 위치에서 오는 책임감 때문인 듯해 안타깝다. 드높은 성취와 별개로, 그는 여전히 자신과 싸우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을 자유가 있는 한 작가일 뿐이다.

각설하고, (유명) 작가들의 돌연한 ‘성명’을 통해 뜻하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탄핵에 대한 찬반 의사와 별개로, 언제 어디서 414명이 중지를 모았는지 연락은커녕 눈치도 채지 못한 작가가 숱하다. 이름 올릴 ‘깜냥’이 되지 않았거나, 지역에 살아서 ‘친목질’에 끼지 못한 게 아니겠냐는 개탄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소외는 문단에서 특정 출판사와 작가들만이 중심이 되는 구조적 문제와 배타성이 드러난 사례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 차에 소셜미디어 일각에서 ‘성명’에 참가하지 않은 작가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고, 온라인 서점 별점 테러까지 나아가는 중이라는 경악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자칭 ‘애독자’들이 예약 판매 중인 신간에 낮은 별점을 던지며 ‘시대의 아픔’에 공감을 표하지 않는 ‘양심’을 추궁하고, “지금껏 모아 왔던 당신의 글들을 이제 분리 수거해야겠네요”라며 ‘성명’에 참가하지 않은 작가 K를 압박한 것이었다(지금 댓글들은 지워졌다).

독자들이 무엇을 바라며 책을 사고 읽은들, 작가는 지극히 사적인 존재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어떤 의견을 밝혀서도 아니고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하다니, 메일을 확인하지 못했거나 개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다면 어쩔 것인가? 아니 설령 다른 의견을 가졌다손 그것이 작가에 대한 공격과 작품 폄훼의 조건이 된단 말인가? ‘성명’에 참여한 경애하는 글벗들을 생각하면 착잡한 마음이지만, K와 같은 이유로 창작의 자유를 공격당하는 작가가 있다면 나는 그가 누구든 소수의 목소리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의견 피력이 개별적 자유 의지에 의한 일이었다면, 그것을 입맛대로 피력하지 않았다고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는 억압이자 폭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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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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