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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의 중국, 과학기술계 ‘졸부’가 아니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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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생형형 인공지능(AI) 딥시크의 로고가 휴대폰의 인공지능 비서 앱과 함께 표시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의 생형형 인공지능(AI) 딥시크의 로고가 휴대폰의 인공지능 비서 앱과 함께 표시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종식 |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



2016년 사드 사태로 촉발되었던 한국의 ‘혐중’ 분위기가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를 계기로 미묘하게 변하는 모양새다. 경제와 군사에 이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의 ‘굴기’와 ‘역습’이 가시화되자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확실히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충격은 중국에 대한 경각심과 대응 방안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다툼은 앞으로 더 격화할 것이다. 모두가 이야기하듯 그 경쟁의 주요 종목은 반도체와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 분야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중국을 깊이 알고 경계해야 할 ‘경중(警中)의 시대’에 한국에는 중국 과학기술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중국 과학기술의 약진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중 과학기술 100년사의 시작과 민족주의





흔한 오해가 있다.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이 최근의 일이라는 생각. 기껏해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수십년의 성취일 것이라는 생각. 그렇지 않다. 오늘날 중국 과학기술의 성공 뒤에는 100년 이상의 축적의 역사가 있다. 중국 근현대 과학기술사는 크고 거칠게 네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번째 시기는 20세기 전반기 중화민국 시대이다. 이때 민족주의 패러다임에 따라 서구 근대 과학이 중국에 뿌리내렸다. 20세기 초, 중국의 청년들은 선배 세대의 실패를 여러차례 목도했다. 전통적 사상은 지키면서 서양의 기술은 수용하자는 동도서기론에 갇혀 반쪽짜리 개혁으로 판명 난 양무운동도, 청나라라는 왕조 체제의 하드웨어까지는 감히 폐하지 못했던 무술변법도, 군벌과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찢겨 무력했던 아시아 최초의 공화혁명도 중화민족을 구원해 주지 못했다. 청년들은 ‘과학’과 ‘민주’를 구호로 민중과 더불어 1919년 5·4운동을 일으켰다. 그렇게 중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과학기술인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이들은 1910년대와 1920년대에 미국과 서유럽 주요 대학에 유학하며 현대 과학의 핵심 현장에서 수학했다. 공부를 마친 뒤 귀국한 이들은 중국 과학계 각 분야의 창시자로서 이름을 세웠다.



1930년대에 이르러 중국의 1세대 과학기술인들은 5·4운동의 시대정신 가운데 민주주의를 후순위로 미뤄두기로 했다. 일본제국의 대륙 침략이 거센 탓이었다. 과학기술인들은 민주적 지도자로 보기는 어려운 중국 국민당 장제스 총통의 정부에 참여했다. 과학으로 국가를 구망한다(科學救國)는 오랜 민족주의의 열망을 우선시한 결정이었다. 고위 과학기술관료 ‘테크노크라트’로서 정관계 내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한 지질학자 웡원하오 같은 이들은 중일전쟁(1937~1945)을 과학기술의 힘으로 뒷받침했다. 이 공으로 과학기술인들은 학문 권력뿐만 아니라 정치권력까지 확보하며 중국 사회의 과학화에 크게 기여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개항기와 식민지 시기를 통틀어 이학·공학 박사를 10여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다. 20세기 전반의 중국은 비범했다.







공산주의 혁명은 과학을 파괴했을까?





또 하나의 오해가 있다.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반과학적이었다는 통념이다. 중국 근현대 과학기술사의 두번째 단계인 마오쩌둥 통치 시기(1949~1976)는 흔히 과학의 암흑기로 간주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 없다. 마오주의 패러다임 아래에서도 중국 과학기술은 그 나름의 발전을 거듭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마오는 과학의 ‘군중노선’을 강조했다. 혁명가로서 마오는 중국 인구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가장 보통의 존재들, 즉 ‘군중’에게 더 친화적인 모습으로 과학이 변모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마오는 과학계에 만연한 선민의식과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자와 농민에게 과학자로 거듭날 수 있는 여러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과학사학자들은 이를 흔히 ‘군중과학’(mass science)이라고 부르는데, 군중과학의 이상은 특히 인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농업과학, 보건의료, 경공업 분야에서 주로 관철되었다. 군중과학의 대표적인 성취로 ‘맨발의 의사’(赤脚醫生)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훗날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저소득국가의 1차 의료 시스템의 모델로 상찬했다.



마오주의 패러다임의 일환으로 광범위하게 집행된 군중과학은 확실히 기존의 엘리트 과학기술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1세대 과학기술인 가운데 상당수는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퇴한 국민당을 따라 타이완으로 이주하지 않고 대륙에 남아 사회주의 ‘신중국’ 건설에 가담했는데, 반우파투쟁,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으로 대표되는 급진 정치의 풍파 앞에서 많은 이들이 숙청을 당했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마오 시기 중국 공산당의 과학기술인 숙청은 우리의 통념보다 제한적이었다고 본다. 과학자에 대한 숙청은 그 분야에서 해당 과학자의 전문지식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전문가들(주로 1세대 과학기술인의 제자로 성장한 2~3세대)이 충분히 존재할 때만 선별적으로 이루어졌다. 산업화와 국방에 필수적인 몇몇 분야에 종사했던 엘리트 과학기술인들은 당과 국가의 전략적인 보호 아래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보장받았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 출신 항공우주공학자 첸쉐썬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러 조건을 볼 때 백번이라도 숙청을 당했어야 할 것 같은 일부 과학기술인들도 멀쩡히 살아남아 연구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자 과학 연구를 수행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많은 과학자들이 공산당의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고 적응하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 나간 것이다. 덕분에 마오 시기에 중국 과학기술계는 핵무기 자체 개발(1964), 수확량이 많은 다수성 벼 품종 자체 개발(1973) 등 굵직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개혁개방 시대’ 정치와 과학의 밀월





마오의 공식 후계자 화궈펑의 짧은 통치기(1976~1978) 이후 덩샤오핑은 정치적으로 공산당의 일당독재는 유지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시장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이른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우리가 살펴볼 세번째 시기, 즉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들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한국의 ‘개발독재’ 시대와 유사했다. 권위주의 정치와 경제 개발이 상호 정당성을 부여하며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개발주의가 시대정신이었던 것이다. 마치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이 박정희·전두환 정부의 우대를 받아 경제와 국방의 토대로서 과학기술을 진작시켰던 것처럼, 중국의 전문가들도 그러한 성격의 과학기술 발전을 추구했다.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을 통한 부국강병이라는 가시적 목표 아래 국가와 과학은 전보다 더 밀착했다.



이제 혁명적 군중과학 같은 대안적인 시도는 환영받지 못했다. 과학과 공학의 존재의 이유는 연구 수월성과 경제적 가치 창출 가능성에 있었다. 덩샤오핑 시기 공산당과 국가는 이를 위해 과학기술인을 더 이상 ‘지식분자’가 아닌 ‘노동 계급’으로 간주하고 예우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노동자 신분은 곧 국가의 주인을 의미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중단되었던 대입 시험 가오카오(高考)가 부활했고, 연구중심대학 모델이라는 세계의 표준에 따라 대학의 경영 방식이 개혁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중국이 드디어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이 참여하고 있는 전 지구적 과학기술의 장에 재가입한 것으로, 다시 말해 ‘정상적인’ 과학의 게임의 룰로 회귀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중국은 서구가 주도하는 과학과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자신들이 후발주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내실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정신은 여기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력을 키울 것인가? 엘리트들의 수월성 추구도 물론 중요했지만, 더 파급 효과가 컸던 전략은 ‘모방’이었다. 개혁개방의 노른자인 경제특구 선전은 사실상 과학기술 특구이기도 했다. 과학사학자들과 과학기술학(STS) 전문가들은 선전 전자상가에서 ‘산자이’(山寨)라 불리던 싸구려 모조품을 만들던 손기술이 축적되어 어떻게 21세기 중국 과학기술계의 혁신을 이끌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있다. 마치 과거 한국의 청계천 기술자들처럼 탁월한 기술적 기지를 가진 선전의 밑바닥 전문가 중에는 마오 시대 군중과학 덕분에 과학기술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농촌의 비엘리트 출신들이 많았다. 개혁개방 시기 중국의 과학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과학계의 지위 향상만큼이나 마오 시기와 그의 사후에 걸쳐 형성된 ‘아래로부터의 모방’ 역량이 혁신과 창조로 개화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25년 민영기업 좌담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와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25년 민영기업 좌담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와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시진핑 신시대 중화주의 패러다임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의 과학기술은 여전히 개발주의 패러다임 아래 발전해왔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5세대 지도자 시진핑은 이러한 추세에 균열을 냈다. 시진핑 시대에 도광양회는 지나치게 겸손한 태도인 것처럼 보였다. 자본주의적 개발의 사다리 위에서 이른바 주요 2개국(G2)으로 거듭난 중국은 이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서구 근대 문명 500년의 패권에 도전하며 대안적이고 더 큰 보편을 지향하고 있다. 그 다차원적인 미래 과제를 상상하고 현실화하고자 중국은 중화제국 시대의 영광스러운 과거로부터 여러 정치적·문화적 담론과 자원을 길어 올리고 있다. 다시 말해,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서구 근대성을 대체할 보편적 세계 질서를 ‘중화’(中華)의 이름으로 재구축하고자 한다. 중화주의 패러다임이라 부를 만하다. 시진핑 시대의 중화주의 패러다임이 기성 패권국 미국과의 격렬한 충돌을 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반도체, 인공지능, 로보틱스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패권 도전국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반도체,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의 분야에서 미국을 꺾고 승리하는 것만이 전부라면, 그것은 서구 근대 세계 질서를 유지하면서 그 최상부를 차지하는 일에 가깝다. 서구 근대성 자체를 대체하겠다는 야심만만한 중화주의의 실현은 아닌 것이다. 중국 과학기술이 중화주의 패러다임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 답은 에너지 문제와 생태환경 문제라는 동전의 양면에서 찾을 수 있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생태 문명’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그저 빈말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래 지구라는 행성의 물질적 수용력과 한계를 간과한 채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폐기의 순환을 추구해 온 것이 서구 근대성의 빛과 어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근대성이 ‘지속불가능’하다면, 그에 대한 대안적 패권과 보편으로서 ‘중화’는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여섯번째 대멸종’, ‘인류세’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생태환경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돌파구를 마련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주장해야 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중국 과학기술이 특히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현상은 이러한 각도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단 거창한 문명사적 접근법을 취하지 않더라도, 에너지와 생태환경의 문제는 간과하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인공지능 개발과 운영을 위한 데이터센터에도 반도체 생산 공정에도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것, 또 바로 그 에너지의 생산과 배분은 생태 발자국을 남긴다는 점은 이미 모두에게 자명하지 않은가.





미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왼쪽 사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반도체가 미중 관세전쟁의 핵심 전장으로 떠오른 가운데 젠슨 황은 17일 중국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기 위해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연합뉴스

미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왼쪽 사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반도체가 미중 관세전쟁의 핵심 전장으로 떠오른 가운데 젠슨 황은 17일 중국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기 위해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연합뉴스




미-중 기술 패권 다툼…한국의 대응은?





한국은 미-중 기술 패권 시대에 어떻게든 반도체 분야에서의 영향력을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인공지능 분야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너무 큰 나머지, 중국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담론이 부분에만 집착할 뿐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에 한하여 52시간 근무제를 철폐하면, 인공지능 정책이 확립되면, 그것만으로 대한민국은 과학기술 강국 중국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최소한 한가지는 분명하다. 과학기술에 관한 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중국은 비유하자면 ‘벼락부자’나 ‘졸부’가 결코 아니다. 지난 100년의 누적이 작금의 약진을 떠받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단기에 효과를 볼 수 있는 ‘특단’과 ‘파격’도 물론 절실히 필요하겠지만 진실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는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한 현실적이되 심원하고 구체적이되 거시적인 책략이다. 바야흐로 ‘경중’의 시대다. 중국을 깊이 알고 경계하며 한국의 미래를 밝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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