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약주 '도화' |
만화방창(萬化方暢·'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지다'의 뜻)의 계절 봄이다.
지금 길거리는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는 벚꽃(벚나무)이 꽃놀이 대상의 관상용보다는 목재나 활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 팔만대장경 목판의 절반 이상이 벚나무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화폭에 담는 '복숭아 꽃대궐' |
조선시대까지 꽃구경으로 최고는 복숭아꽃(복사꽃)과 살구꽃이었다. 복숭아꽃은 오늘날의 성북동 일대인 북둔이 유명했고 복숭아꽃이 피면 이곳으로 꽃구경을 왔다. 그리고 살구꽃은 행촌동 근처의 필운대(弼雲臺)가 유명했다.
연분홍 '살구꽃'에 가던 발길을 멈추고... |
옛 그림을 보면 복숭아꽃이 많이 나온다.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
안견의 '몽유도원도', 임득명의 '등고상화', 정선의 '필운대상춘' 등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모두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있는 무릉도원, 즉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이고 이상향을 그렸다.
임득명 '등고상화' |
즉 우리 조상은 도처에 복숭아꽃이 가득한 곳에서 살고 있었기에 그곳이 무릉도원이다. 그래서 무릉도원을 그림으로도 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정선 '필운대상춘' |
그러다 꽃구경의 대상이 벚꽃으로 바뀐 건 일제강점기 이후였다.
1909년 11월 1일 일제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그곳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했다. 이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 초대 통감은 개원 5일 전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해 개원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이후 1922년에 창경궁에 벚꽃을 심어 벚꽃놀이를 즐기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1926년에서 1927년 사이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동요 '고향의 봄'이 나왔다. 가사 중에 복숭아꽃, 살구꽃이 나온다. 이 노래의 배경은 작곡가 이원수가 살던 창원군이라 알려졌다.
하지만 창경원에서 벚꽃놀이하던 시절이 아닌, 창경궁에서 조선의 왕이 복숭아꽃 살구꽃을 보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었나 하고 생각도 든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렇듯 사랑한 복숭아꽃을 우리 조상이 술의 재료로 사용 안 했을리가 없다
만개한 복숭아꽃을 넣어 술을 빚고, 술독에 꽃가지를 꽂아두고 술이 익기를 기다렸다 마시는 도화주(桃花酒), 일명 복사꽃 술을 마시곤 했다.
은은한 복사꽃 향과 가지에서 우러나는 쌉쌀한 맛이 조화롭고 주로 사대부와 선비가 즐기곤 했다.
도화주는 우리 주변에서 복숭아나무가 사라졌듯 사라져 오늘날에는 일부러 담그지 않는 이상 맛볼 수 없는 술이 됐다. 그나마 도화주를 만드는 방법은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임원경제지', '김승지댁주방문', '부인필지' 등에 기록돼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명인들이 복숭아를 잊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는 복숭아꽃 대신 복숭아를 사용해 많은 술을 빚고 있다.
현대의 복숭아술을 주종별로 막걸리와 소주, 과실주(와인), 약주, 기타 주류로 나눠서 어떤 술이 있는지 알아봤다.
막걸리는 국순당의 '국순당 쌀 복숭아', 우리술의 '복숭아 동동', 서울 장수의 '복숭아맛 월매', 천지인의 '디비저 3.5', 같이양조장의 '납작복숭아', 유천양조의 '복숭아 생막걸리', 양주도가의 '막끌림', 사일로 브루어리의 '사일로 막걸리 복숭아', 백경증류소의 '백경10 복숭아' 등이 있다.
복숭아 막걸리 |
소주(증류식/희석식)는 롯데의 '처음처럼 순하리 복숭아', 보해양조의 수출전용 '달콤', 무학의 '좋은데이 핑크', 한국애플리즈의 'The 찾을수록 복숭아', 하이트진로의 '복숭아에 이슬', 영덕주조의 도원결의 (15도, 25도, 40도), 블루앤로드의 '도25'와 '도30' 등이 있다.
복숭아 소주 |
과실주(와인)는 해미읍성딸기와인의 '해미복숭아주8도', '해미 세인트하우스 복숭아 스파클링와인 6도', 도란원의 '샤토미소 복숭아 와인 9도', 솔티마을 '오롯이 복숭아 스파클링 와인 9도', 오계리 와이너리의 '복숭아 와인', 고도리 '복숭아와인 6.5도', 화림양조의 '피치탑', 금이산농원의 '복숭아와인 12도', 댄싱사이더의 '치키피치 복숭아 벌꿀 4.5도' 등이 있다.
복숭아 과실주 |
약주는 메들리양조장의 '도화'가 있고 기타 주류로는 하이트진로의 이슬톡톡 복숭아, 리밋브루잉의 복복, 오나이릭의 '우주술 미드나잇 Classic (복숭아 몽환주)' 등이 있다.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복숭아술이 이처럼 많으니 현대인들도 우리 조상님들 못지않게 복숭아를 사랑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봄에 교서관(조선시대에 서적의 인쇄, 제사 때 쓰이는 향과 축문, 도장 등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서적 인쇄에 필요한 활자도 주조)의 복숭아꽃 나무 아래에서 술을 마시는 '홍도음(紅桃飮)'이라는 술자리를 가지곤 했다.
교서관의 현재 위치는 남산의 숭의여자대학교다.
봄날 남산의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복사꽃을 보면 술을 마시던 우리 조상은 역시 풍류를 제대로 알고 즐길 줄 아는 이들이었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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