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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끈질기고 오래된 인류의 '식인 역사' [의사와 함께 펼쳐보는 의학의 역사]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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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프면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전제가 된 이 문장이 과연 당연한 사실이 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마취제도 진통제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세균과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 머나먼 옛날이 아니라 기껏해야 100년, 200년 전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무지의 시대에 어떻게든 살리려 애썼던 의사들, 그리고 그 의사들에게 몸을 맡겨야만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


석기시대에도 확인된 식인풍습
영양보다는 의례적 이유 강해
남미 아즈텍 풍습이 대표사례

식인. 사람이 사람을 먹는 행위는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오래된 근본적 금기 중 하나다. 식인 풍습에 대한 기록은 북미, 태평양 섬, 아프리카, 남미 등 다양한 곳에서 관찰된다. 식인은 영어로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대항해시대를 연 콜럼버스와 관련이 있다. 콜럼버스가 1492년 11월 현재 쿠바 북서쪽 해안의 아라와크족과 타이노족에게서 ‘카리브족’ 또는 ‘카니베스족’이라고 불리던 부족의 식인 풍습에 대해 듣게 됐고, 이후 식인을 ‘카니발’(에스파냐어)이라고 불렀다.
정강이뼈와 비슷한 시기의 동물 뼈 화석에 있는 자국들. Jennifer Clark, Briana Pobiner 제공·연합뉴스

정강이뼈와 비슷한 시기의 동물 뼈 화석에 있는 자국들. Jennifer Clark, Briana Pobiner 제공·연합뉴스


식인 풍습은 석기시대에도 확인된다. 뼈에서 인간의 치아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사람을 먹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학술적으로 보면 네 가지로 이유를 들 수 있다.

우선 영양학적인 이유다. 기근 등으로 먹을 게 없어 사람을 먹었던 것이다.

의례적인 것도 있다. ‘상대의 장점이 내게 흡수될 것’이란 믿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치료를 위해 식인을 한 경우도 있는데, 르네상스 시절 유럽에서 이집트의 미라를 치료제라고 생각하고 '복용'했다고 한다. 또 정신질환자나 범죄자에 의한 식인도 있다.

마지막으로 권력이나 억압에 의한 경우도 있다. 삼국지연의에는 동탁이 자신에게 반대했던 사람을 요리해 다른 신하들에게 대접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열국지에 따르면,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명장 악양이 중산국을 공격했을 때 하필 그의 아들 악서는 중산국에 있었다. 중산국은 악서를 볼모로 삼았지만 악양은 군대를 뒤로 물리지 않았고, 중산국왕은 악서를 죽여 국으로 만든 뒤 악양에게 보냈다. 그런데 악양이 태연하게 국을 다 먹고 '식사 대접 잘 받았다. 곧 너희 군주의 국도 끓여 먹고 말겠다'고 했다는 고사도 있다.

신화에도 빠지지 않는다. 프란시스코 고야(스페인)가 자식을 잡아먹는 모습으로 묘사한 그리스 신들의 아버지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자식 중 한 명에게 퇴위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자, 자식들을 집어삼킨다. 그러다 제우스에게 퇴위당하는데, 이 제우스도 자신의 아내 메티스를 죽이고 먹어 그녀의 지혜를 획득한다는 대목이 있다.


최근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사례는 파푸아뉴기니의 보어족에서 발병한 쿠루병이다. 뇌에 주로 분포하는 프라이온으로 인해 전염되는 병인데, 여성과 아이들이 뇌를 먹고 나머지 살덩이를 남자가 먹는 풍습으로 여성들이 유독 많이 이 병에 걸렸다. 여성 사망률이 남성에 비해 8배나 높아 성비가 비정상적으로 형성될 정도였다. 호주 당국자들은 처음 ‘정신 질환’이라고 생각했고, 부족 사람들은 주술이나 마법에 의한 저주라고 생각했으나 연구로 인해 식인이 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즈텍 문명. ⓒ 위키백과

아즈텍 문명. ⓒ 위키백과


그러나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아스테카 문명이다. 아즈텍 성직자의 의무는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과 피를 꺼내 신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성직자들의 옷이 인간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신전에는 ‘촘판틀리’라는 해골 벽(또는 해골 선반)이 있다. 이곳에 놓인 두개골이 6만 개, 혹은 13만6,000개 정도라고 한다. 신전 꼭대기에는 의식에 바쳐진 세 사람의 심장이 놓여 있었고, 사방에 엉겨 붙은 피가 있었다.

아스테카 문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문명에서 식인은 깊숙이 자리 잡지 못했다. 이유를 보자면, 우선 사람이 사람을 먹으면 병이 고스란히 옮기 쉽다. ‘인육을 먹으면 저주에 걸린다’ ‘병에 걸린다’는 설화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영양학적으로도 불리하다. 50㎏ 남성 1명이 희생되면, 대략 30㎏의 고기가 나오는데, 이게 한 1만8,000㎉다. 성인 남성의 권장 칼로리가 2,400㎉ 정도니 6, 7명 사람이 매일 성인 남성 하나를 사냥해야 하는 셈이다. 차라리 돼지나 소 등 대형 동물을 사냥하는 게 훨씬 낫다.


그렇다면, 대체 왜 아즈텍 등 일명 메소아메리카에서 식인이 보편화됐을까? 단순히 그들이 악마여서는 아닐 것이다. 연구 결과, 이 지역은 동물 자원이 많이 파괴된 상태에서 빙하시대의 종결을 맞았다고 한다. 즉 일반적 계층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정치·사회적 안정, 즉 통일 왕국이 등장하면서 인구가 늘긴 늘었는데, 어느 정도까지는 옥수수와 콩이 대체하긴 했지만 1400년대를 기점으로는 흉년도 들어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즉 단백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 과연 식인이 이 단백질 부족 문제를 완전히 해소했을까? 추정에 따르면 당시 아스테카 문명의 인구는 대략 200만 명 정도이고, 식용 포로는 연간 1만5,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기보다는 통치자가 제공하는 일종의 ‘위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아즈텍의 식인 풍습은 자연환경 및 당시 통치권자 나름의 계산에 의해 탄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낙준 닥터프렌즈 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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