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3일 저녁 7시께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 투쟁문화제에 야생맘마먹음이보존협회, 하데스타운노동조합 등의 10여개 깃발과 함께 시민들이 노조원들과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알려진 노동조합 간부가 있다. 새벽에 출근하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많아서 새벽 5시에 교육을 해야 하는 일이 잦다. 최근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채 국회에 들어가다가 제지당했다. 입구에서부터 경찰들이 “어디 가냐? 약속은 된 거냐?” 꼬치꼬치 캐물어서 “윤석열 내란도 막지 못한 것들이 선량한 시민한테 무슨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냐?”고 호통을 치며 따지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공손하게 설명하고 들어갔다고 한다.
지방에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기업에 노조를 설립하느라고 며칠 내려가 머문 적이 있다. 발기인 몇 사람이 모여 노조 설립총회를 치르면서 “일이 잘못되면 마지막에는 우리들만 남을 수도 있다”고 비장한 각오를 했다. 설립보고대회를 치르고 조합원들의 가입을 받았다. 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장의 호응은 뜨거웠다.
점심시간에 노조 조끼를 처음 착용하기로 결의했지만 회사 관리자의 눈치를 보느라고 거의 입지 못했다. 몇명 안 되는 여성 조합원들 중 두 사람이 노조 조끼를 입고 식당에 들어섰다. 한 남성 조합원이 그 모습을 찍어 노조 누리집 게시판에 올리면서 “조합원님들, 뭐 느껴지시는 거 없습니까?”라고 간단하게 적었다. 그날 저녁, 노조가 마련한 조끼가 모자랐다. 그 노동조합에 천명 넘는 조합원이 가입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 올랐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송곳’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대형 마트에 노조를 설립하고 처음 조끼를 착용하기로 한 날, 한 계산원은 가방에 꽁꽁 감춰 들여온 조끼를 계산대 밑에 숨어서 몰래 입는다. 눈을 꼭 감은 채 용기를 내 겨우 일어선 뒤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자, 조합원들이 저마다 조끼를 입고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감개무량해 눈물짓는다. 아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말리던 몸이 아픈 엄마와 그 아들도 조끼를 입은 채 서로 마주 본다. 노동조합이 설립될 때마다 벌어지는 일들이다.
정보통신 기업에 노동조합을 설립하면서 조끼를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단결’ ‘투쟁’ 등의 구호가 적힌 조끼가 민주노조의 상징이긴 하지만, 직원들의 정서를 고려하면 노동조합에 쉽게 다가서기 어렵게 만드는 저해 요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조끼 대신 모자가 달린 ‘후드 티셔츠’를 입기로 했다. 조합원을 한명이라도 더 가입시키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반영된 선택이다. 그 결정을 전해 들으며 “서양 사람들이 볼 때는 ‘후드 티셔츠’가 우리나라 조끼와 비슷한 느낌의 옷이야. 영화에 보면 뒷골목 범죄자들이 그런 옷을 많이 입고 나오잖아”라는 농담을 하며 서로 웃었다. 그게 뭐라고…. 우리 사회의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감은 그렇게나 크다.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의 양상이 응원봉의 물결로 바뀌고 나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노조 조끼를 입고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계산하려고 했더니 다른 사람이 이미 내 몫까지 계산했다고 한다.”, “노조 조끼를 입고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남자가 자리를 양보했다. 마다했는데도 ‘내가 꼭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다’면서 굳이 나를 자기 자리에 앉혔다. 앉아서 오는데,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서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노동단체의 깃발조차 못 들게 했다. 사회자가 마이크로 “거기 깃발 내리세요!”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노동단체의 깃발이나 구호가 마치 집회의 순수성을 침해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회가 점차 극우 보수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청소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인문학, 노동인권’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마친 뒤, 한 학생이 질문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청년들의 극우 보수화가 매우 심각합니다. 언제쯤 돼야 우리 사회가 다시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할까요?” 내가 어쭙잖게 답했다. “언제쯤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느 쪽으로 노력해야 하는지, 그 방향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더 많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집회 현장에서 민주노총 머리띠와 응원봉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하는 청년들이 우리 사회 희망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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