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러시아군 소속으로 전투를 벌이다 우크라이나 군에 생포된 중국인 장런보(왼쪽)와 왕광쥔(오른쪽)이 14일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우크린포름·키이우 포스트 제공 |
최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에서 러시아군 용병으로 싸우다 붙잡힌 중국인 두 명이 1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전 세계 매체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주최로 열린 이 회견에서 포로 장런보(張仁波·27)와 왕광쥔(王廣軍·34)은 “러시아군이 외국인 용병을 혹독하게 다뤘다”, “실제 전쟁은 TV·영화에서와 달리 끔찍했다”고 토로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8일 “러시아군에 가담한 중국인 2명을 포로로 잡았다. 현재 150명 이상의 중국인이 러시아군에 소속되어 싸우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이를 알고도 모른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왕씨는 “중국에서 틱톡(TikTok) 광고를 보고 (러시아군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 카잔과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등을 거쳐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했다. 왕씨는 “러시아군 훈련소에 들어가자, (탈영을 막기 위해) 화장실 갈 때조차 군인이 총을 들고 따라다녔다. 도망칠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러시아군 용병으로 전투에 참가한 중국인 두 명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에서 생포했다며 9일 얼굴과 여권 사진(작은 사진)을 공개했다. 두 사람은 공개된 인터뷰 영상에서 각각 허난성 출신의 왕광쥔(王廣軍·34, 왼쪽), 장시성 출신의 장런보(張仁波·27)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일 “러시아 측에 서서 우크라이나군과 대전 중인 중국 국적자가 155명 있다”면서 “중국 정부도 용병에 대해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즉각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발하면서 “중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무력 분쟁 지역에 가지 말고 군사적 활동에 관여하지 말 것을 권고해 왔다”고 밝혔다. 러시아 크렘린궁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EPA 연합뉴스 |
이들의 러시아군 내 생활은 매우 열악했다. 왕씨는 “로스토프나도누 훈련소의 막사는 전기가 끊기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고 했다. 또 “식사 보급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하루나 이틀에 겨우 한 끼 식사를 받기도 했다. 새벽 4~5시까지 훈련을 받아도 돌아오는 것은 쌀 조금뿐이었다”고 했다. 또 “많은 중국인 용병들이 잔혹 행위와 인종차별, 임금 체불 등을 겪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했다.
이는 지난 2월 본지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보급은 확고하게 해줬다”, “먹는 것은 부족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북한군 포로들과는 다른 상황이다. 우크라이나군 관계자는 “북한군의 경우 정식 파병인 만큼 러시아군에서 더 나은 대접을 해줬을 것”이라며 “북한에서 워낙 열악한 보급만 받다 보니 러시아군의 보급도 매우 넉넉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고 했다.
왕씨와 장씨는 ‘실제로 경험한 전쟁의 현실은 끔찍했다’며 몸서리를 쳤다. 왕씨는 “TV나 영화로 보던 것과 진짜 전쟁은 전혀 달랐다”며 “실제로 전투에 투입되면 1분 1초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모른다”고 했다. 장씨는 “부모님은 내가 러시아군에 들어간 사실조차 모른다. 전쟁에 참가한 것은 후회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포로가 되어)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빨리 집에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두 포로는 중국 내부 여론이 러시아의 주장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왕씨는 “중국에서는 러시아가 강하고 우크라이나가 낙후됐다는 식의 말을 많이 듣는데, 모두 거짓이다”라며 “(중국 동포들에게) 이 전쟁에 절대 가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장씨는 “우크라이나는 중국에 식량을 수출하는 큰 파트너였는데, 전쟁 이후로 수출량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중국에서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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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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