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에서 공군 전투기 민가 오폭 사고가 발생해 사고 현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좌표 입력 오류로 공군 전투기가 민가를 폭격한 사건과 관련, 조종사들은 표적 좌표와 연동된 고도 값이 훈련 계획과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경고 신호를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좌표 입력 실수를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무시하고, 오히려 고도를 임의로 고쳐 잘못된 좌표에 맞게 폭격을 감행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14일 중간 조사·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조종사 두 명의 명확한 과실을 확인했다”며 이처럼 밝혔다. 조사본부는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들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군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또 해당 부대 지휘관 2명을 추가로 형사 입건하고 관련자 9명은 해당 기관에 징계 조치 등을 위한 비위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6일 오전 한·미 자유의방패(FS) 연합연습의 전 단계 훈련 격인 ‘연합·합동 통합 화력 실사격 훈련’ 과정에서 공군 모 부대 소속 KF-16 전투기 2기가 경기도 포천시 노곡리 일대 민가에 MK-82 폭탄 8발을 투하했다. 이로 인해 민간인 최소 10여명이 다쳤다.
이에 더해 조종사들이 좌표와 연동된 고도 값 오류도 무시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JMPS는 좌표 입력 시 고도 값을 자동으로 계산하는데, 잘못된 좌표 입력에 따라 예상 고도 값이 약 550ft가 됐다. 이는 훈련 계획 문서 상의 2035ft와 크게 차이가 나는 수치였다. 그러나 두 조종사는 애초 입력한 좌표 값을 확인한 게 아니라 550ft라는 수치를 지우고, 임의로 이를 2035ft로 수정했다. 이상을 감지하고 실수를 바로 잡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되레 걷어찬 셈이다.
좌표 입력은 1번 조종사(편대장)가 불러주는 것을 2번 조종사(편대원)가 입력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들은 각기 “정확한 좌표를 불렀다”, “불러주는 대로 입력했다”고 해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조사본부는 대질 신문 등을 통해 보완 수사할 계획이다.
6일 오전 10시4분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민가에 공군의 공대지 폭탄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군은 이날 승진과학화훈련장 일대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통합화력 실사격 훈련 도중 KF-16 조종사의 좌표 입력 실수로 일어난 오폭 사고라고 밝혔다. 이 사고로 성당과 민가 주택, 창고, 비닐하우스 등이 파손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진 MBN 화면 캡처] |
이처럼 두 조종사들이 잘못 입력한 좌표·고도 값은 이동식저장장치(USB)와 비슷한 형태의 연동 장치인 비행자료 전송장치(ADTC)를 통해 전투기에 그대로 입력됐다. 이후 이륙 직전 최종 점검 단계에서 경로 좌표·표적 좌표를 재확인하는 과정, 폭탄 투하 직전 육안 확인 등의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모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조사본부의 조사 결과다.
조종사들은 사고 당일인 6일 MK-82 폭탄의 비정상 투하가 이뤄지고 2~3분 뒤에야 상황을 인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정황은 이들의 무전 교신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조사본부는 이들 조종사의 사전 교육 등을 담당했던 해당 부대의 전대장(대령)과 대대장(중령)도 지휘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상 공범)로 형사 입건했다고 밝혔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이들 지휘관은 실무장 훈련의 위험성을 간과했고, 실무장 계획서를 확인하지 않거나 세부 훈련 계획에 대한 감독 및 안전 대책 수립, 비행 준비 상태 점검 등을 소홀히 했다”며 “지휘 관리·안전 통제를 하지 않은 부분과 관련해 오폭 사고와 상당한 인과 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당 편대의 실무장 훈련 시간 등 달라진 사항이 있었는데 이를 면밀히 점검하지 않았고, 이를 상급 부대에 알리지도 않았다는 설명이다.
조사본부는 해당 편대가 사전 훈련에서 실제 경로의 일부만 이행해 봤을 뿐 전체 좌표를 입력하지 않았다는 점, 이로 인해 사고 전날 경로·표적 좌표 전체를 새로 입력하는 과정에서 오기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만약 사전에 전체 경로 좌표가 입력돼 있었다면 수기에 의존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게 공군의 훈련 지침 문언을 위반한 것인지 여부는 명확히 가리기 어렵다고 한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포천 전투기 오폭 사고 관련 브리핑을 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
또 공군작전사령부는 오전 10시 4분 비정상 투하가 이뤄진 뒤 3분 뒤(10시 7분)에 이 상황을 인지했지만, MK-82 폭탄의 파편을 확인한 뒤에야 상급 부대에 알리는 등 보고를 지연한 점을 지적 받았다. 공군이 오폭 사고를 언론에 확인한 건 사고로부터 97분이 지난 오전 11시 41분 경이었다.
조사본부는 이 과정에서 상급부대 보고 지연 등 조치를 미흡하게 한 공군 7명, 합동참모본부 2명 등에 대해 각 기관에 징계 등 인사 조치를 위한 비위 통보를 했다. 공군작전사령관에 대해서도 지휘 책임을 물어 경고 조치할 예정이라고 조사본부는 덧붙였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국방부는 지난달 10일부터 조사본부 산하에 수사단장을 포함해 23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편성하고 관련 수사를 진행해 왔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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