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로 향하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언론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그러나 “무차별적 관세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혼선이 오히려 기업에 더 치명적인 불확실성(uncertainty)을 확대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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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환영에, 돌연 “반도체와 함께 품목관세”
혼선은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지난 11일 심야에 반도체 제조장비, 스마트폰, 평면 디스플레이 모듈,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를 비롯한 반도체 장치, 집적회로 전자제품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발표에서 비롯됐다.
해당 조치로 아이폰의 87%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어, 145%에 달하는 대중(對中) 관세를 고스란히 물어야 했던 애플을 비롯해 미국의 첨단 기술 업체들의 숨통을 틔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삼성전자 역시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와 함께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UFC 314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그러나 12일 중국 상무부가 성명을 통해 “미국이 잘못된 일방적인 접근 방식을 바로잡기 위한 작은 진전을 보여준다”고 밝힌 뒤 분위기가 뒤집혔다.
트럼프 정부의 핵심 참모들과 장관들은 이날 줄줄이 TV 인터뷰를 자청해 “해당 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나 제외는 없다”며 “전자제품 등은 한두 달 뒤에 발표될 ‘반도체 품목관세’와 함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소셜미디어(SNS)에 “미국을 상대로 이용한 비(非)금전적 관세 장벽 및 불공정한 무역수지와 관련해 누구도 봐주지 않겠다”며 “우리는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 것이고, 미국인을 존중하지 않는 중국 같은 적대적 무역 국가의 인질로 잡혀 있을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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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정책의 불확실성 확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스마트폰 등에 대한 엇갈린 신호를 시장에 보내면서 미국 무역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며 “무역의 불확실성은 소비자 신뢰도를 하락시키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13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의 골프장을 떠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스마트폰 등에 상호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한밤 공지' 이후 플로리다에서 골프를 치고, UFC 경기를 관람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기술분야 전문 싱크탱크 ‘R스트리트 연구소’의 아담 티에러 선임연구원은 WSJ에 “특히 기술 분야에서 롤러코스터처럼 번복된 이번 관세 혼란은 앞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이번 조치와 관련해 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결정적인 시점에 있고 경기 침체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도 패닉에 빠졌다. 특히 ‘손바닥을 뒤집듯’ 반복되는 정책 혼선에 대한 불만이 컸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진출 기업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기업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이라며 “백악관이 발표하는 정책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기업의 입장에선 아무런 정책적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심지어 미국 기업인 애플조차도 자국 정치를 믿지 못해서 아이폰 재고를 엄청나게 쌓아놓고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모든 기업이 핵심 참모들에게 끈을 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말도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상황에서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발표도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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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관세 일부 기업에 유연…확실친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 골프장과 UFC 경기 관람 등으로 주말을 보낸 뒤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철강과 자동차에 했던 것처럼 반도체를 비롯한 기타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머지않은 시점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우리는 반도체 등을 미국에서 만들고 싶기 때문에 정책은 이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와 아이폰 등에 부과되는 관세와 관련해선 “일부 기업에는 유연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다시 “(유연성은) 확실하진 않다”는 단서를 달았다. 관세율에 대해서도 “다음 주 중에 발표하겠다”며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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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쿡, 8년 전 이미 “미국산 아이폰은 불가능”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기업과 시장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제조 시설을 미국으로 옮겨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쿡은 8년 전인 2017년 아이폰 생산을 중국에 집중한 배경에 대해 “중국은 더 이상 인건비가 싼 나라가 아니다”라며 “애플이 중국에 투자한 이유는 고급 기술 인력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플 로고 옆에 아이폰이 세워져있다. AFP=연합뉴스 |
이어 “중국엔 당장 축구장 여러 개를 가득 채울 만큼의 고급 기술 인력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회의실 한 개를 채우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단기간에 ‘메이드 인 USA’ 아이폰을 생산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등은 인터뷰 때마다 “훌륭한 미국 노동자들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아이폰을 만드는 작은 나사를 조이는 수백만 명의 인간 군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에는 숙련된 기계 조작 인력과 수작업 능력을 갖춘 수백만 명의 노동력이 존재하며, 이는 미국에서 대체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미국이 제조업의 글로벌 분업 시스템을 독점하겠다는 공약의 설계 자체를 문제 삼으며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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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관세 때리면, 아이폰은 500만원?
실제 전문가들은 중국에 생산 기반을 든 아이폰에 145%에 달하는 대중국 관세를 부과할 경우 현재 1000달러 가량인 아이폰의 미국 내 소비자 가격은 3500달러(약 512만원)로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는 “애플은 이미 차기작인 아이폰17의 생산 라인을 중국에 설치한 상황”이라며 “애플이 단 몇 달 안에 아이폰17의 생산을 인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은 엄청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가격 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0일 상하이의 한 애플 스토어에 아이폰 16이 전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
실제 웨드부시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2억2000만~2억3000만대의 아이폰을 생산해,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애플이 아이폰 공급망 10%만 미국으로 이전하더라도 약 300억 달러(약 42조8340억원)가 들고, 이전에만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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