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IBS 제공] |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국내 연구진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기억력 저하에 관여하는 뇌 속 단백질이 새롭게 찾아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창준 단장 연구팀은 뇌 속 별세포가 발현하는 단백질 ‘시트루인2(SIRT2)’가 기억력 손상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생성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임을 규명하고, 이를 억제함으로써 단기 기억력 회복이 가능함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별세포(astrocyte)는 전체 뇌세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별모양의 비신경세포로, 신경세포 간 신호전달을 조율하고 뇌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알츠하이머나 뇌 염증과 같은 질병 환경에서는 별세포의 수와 크기가 증가하며 ‘반응성 별세포(reactive astrocyte)’로 변하는데, 질병 초기부터 염증 반응을 유도하고 신경 퇴행의 시작과 진행에 깊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가바 생성을 조절할 수 있는 핵심 열쇠로 SIRT2에 주목했다. SIRT2는 가바 생성 경로의 마지막 단계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알츠하이머 모델 생쥐의 별세포에 발현되는 유전자들을 분석하자 그 발현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어 가바 생성과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별세포에서 SIRT2를 유전자 수준에서 억제하거나, 약물을 처리해 활성을 억제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알츠하이머에서 반응성 별세포의 가바(GABA)·과산화수소 생성 경로와 SIRT2 억제 효과.[IBS 제공] |
별세포의 SIRT2를 억제한 결과, 별세포 내 가바 생성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으며, 신경세포에 대한 억제 작용도 약 30~40% 감소했다. 또한, SIRT2 억제가 실제 기억력 회복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생쥐가 새로운 경로를 기억하고 탐색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미로 실험도 진행했는데, 손상된 단기 기억이 정상 수준 가까이 회복되는 효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SIRT2가 가바 생성을 결정짓는 핵심 효소임을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대사 경로의 앞 단계에서 작용하는 또 다른 단백질 ‘알데히드 탈수소효소 1A1(ALDH1A1)’의 역할도 함께 확인했다. ALDH1A1을 억제했을 때도 가바 생성이 감소했지만, SIRT2를 억제했을 때만큼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았다. 이 결과는 SIRT2가 가바 생성 경로의 마지막 단계를 조절하는 핵심 효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한편 가바는 SIRT2가 관여하는 대사 경로의 마지막 단계에서 생성되지만, 과산화수소는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SIRT2를 억제하면 가바 생성은 줄어들지만, 과산화수소로 인한 신경세포 손상은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두 물질의 생성 단계가 다르다는 것은 알츠하이머의 병리를 보다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창준 IBS 단장은 “이번 연구는 별세포의 대사 경로를 조절해 알츠하이머 치매의 기억력 저하를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특히 SIRT2는 가바 생성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핵심 표적으로, 정밀한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한 유효 타깃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몰레큘러 뉴로디제너레이션(Molecular Neurodegeneration, IF 14.9)’에 지난 1월 온라인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