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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뱉은 말이라도 지킨다면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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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유진 | 오픈데스크팀장



“아임 어 그래주에이트 오브 하버드.”(나 하버드 졸업했어요)



2023년 8월5일. 폭염과 부실 운영으로 파행을 거듭하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나타났다. 현장을 점검하던 그는 하버드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있던 한 외국인 대원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기자들 사이에서 과도하게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유별난 ‘영어 사랑’으로 화제가 되곤 했다.



“프루덴셜 레귤레이션(prudential regulation)이라는 것은 굉장히 시스텀매티클리(systematically) 연결이 되어 있는 분야가… (중략)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global supply chain)의 디스럽션(disruption)의 문제가 일어나는…”(2022년 11월15일 기자간담회) 이런 식이니 그의 발언을 빠짐없이 받아 치고도 무슨 말인지 다시 해석해야 하는 기자들의 심정이란.



기자들의 고난으로만 끝나면 다행이지만 정책 결정의 최정점에 있는 고위 공직자의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 결국은 정책의 혜택을 봐야 하는 국민들의 손해로 이어진다. 그러니 국립국어원에서도 공직자·공공기관이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공공언어’를 두고 특히 외국어는 될 수 있으면 쉬운 우리말로 쓰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2022년 10월9일 제576돌 한글날 경축식 기념사에서 “정부는 공공기관, 언론과 함께, 공공언어에서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을 줄이고,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나가겠습니다”라는 다짐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기념사를 누가 했느냐, 바로 한 권한대행이다. 국정 2인자가 약속했으니 그대로 지켰다면 좋았겠으나 그 자신부터 그러지 않았다.



2년여가 지나 한 권한대행은 다시 한번 자신의 말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해 12월26일 그는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해야 한다”며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을 임명하지 않았다.



형식적 임명조차 거부하던 그가 지난 8일에는 선출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기습 지명했다.



“(4월의) 한덕수가 (12월의) 한덕수를 배신하는 것”(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보수 언론조차 “모순적 행보가 혼란스러운 정국을 더 어지럽히고 있다”며 “왜 표변했을까”(동아일보 10일치 사설)라고 묻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연일 ‘한덕수 대선 차출론’을 띄우고 한 권한대행은 출마에 확실히 선을 긋지 않고 있다. 앞서 총리실 간부들에게 “대선의 ㄷ 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더니 어느새 “그런 일이 있으면 알려드리겠다”(동아일보 11일치 보도)는 말로 묘하게 태도가 달라진 모양새다.



이번만큼은 한 권한대행이 “대선의 ㄷ 자도 꺼내지 말라”던 말을 끝까지 지킬 순 없을까. 그는 윤석열 정부의 유일한 국무총리로, 실패한 국정 전반의 책임을 윤 전 대통령과 나눠 가진다. 12·3 내란사태 관여 의혹도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헌법을 무시한 행태는 어떤가. 지난 2월27일 헌법재판소가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권한 침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까지 마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그가 지켜야 할 말은 또 있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안정된 국정 운영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것이 제 긴 공직 생활의 마지막 소임이자 가장 중대한 임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14일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첫날 한 권한대행이 국민에게 했던 약속이다. 2017년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은 대선 55일 전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금 한 권한대행이 할 말은 이것뿐이다.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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