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워싱턴 DC의 한 매장에 애플 아이폰이 전시되어 있다. 미국 정부는 12일 스마트폰과 PC,반도체 등에 대해 상호관세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AFP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관세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스마트폰·컴퓨터·반도체 등은 상호 관세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이 12일 발표했다. 트럼프가 중국산 제품에 총 145%에 달하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자 가격 폭등 우려가 번진 아이폰(애플 스마트폰) 등에 대해선 상호 관세를 면제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에서 팔리는 아이폰은 모두 해외에서 최종 조립된 수입품이며 이 중 87%는 중국산이다. 미 국채·주식 가치가 동반 하락한 후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대한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지난 9일 밝힌 트럼프가 주요 전자 제품 관세까지 추가로 면제하며 다시 한발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미 정부의 스마트폰과 반도체 관세(메모리·비메모리) 면제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이번 조치로 이들 품목에 대한 관세가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닐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예고해 온 반도체에 대한 추가 품목 관세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월요일(14일)에 매우 구체적인 답을 주겠다”고 답해 별도 지침이 나올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는 그동안 국가 안보를 위해 관세를 올릴 수 있도록 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반도체 관세를 조만간 올리겠다고 밝혀 왔다. 13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 장관도 “상호 관세가 면제된 첨단 제품은 한 달 후 적용할 반도체 품목 관세에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
◇보복 관세, 주가 폭락, 여론 악화에… 점점 꺾이는 트럼프
트럼프는 이 같은 ‘양보’를 하면서도 중국에 대해서만은 ‘145% 추가 관세’를 고수해 왔다. 형식적으로는 이 중 125%가 상호 관세, 20%는 펜타닐 유입의 책임을 물은 징벌적 국가 관세다. 중국 또한 미국산에 대한 ‘125% 관세’로 미국에 맞서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산 수입품 의존도가 큰 미국의 소비재 물가가 급등하리라는 우려가 확산하자 트럼프가 결국 아이폰 등 주요 전자 제품만큼은 중국산까지도 관세를 면제하기로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2일 관세 유예 품목엔 스마트폰·컴퓨터·반도체·디스플레이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 디지털 네트워크 장비 등 총 20개 품목이 포함됐다. 대부분 미국 전자 제품 관련 상품들이다.
관세는 수입국의 개인·법인이 부담하기 때문에 관세가 올라가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가격이 인상되고 소비와 기업 실적이 동반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산 의존도가 큰 아이폰의 경우 관세 탓에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올라가리라는 전망이 나왔는데, 이로 인해 아이폰 판매가 줄면 애플의 실적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애플 주가는 이 같은 우려에 트럼프가 상호 관세를 발표한 지난 2일 이후 한때 23% 폭락하기도 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관세를 매기면 미국 내 전체 물가가 크게 오를 우려도 있다. 이런 전망에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자 미 정부가 (이들 품목을) 면제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아래) 미국 대통령이 측근 일론 머스크(트럼프 오른쪽)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13일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UFC 경기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이날 경기장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 보건복지부 장관과 그의 아내 셰릴 하인스(트럼프 오른쪽 위), 머스크의 아들 ‘엑스 애시 에이 트웰브(X Æ A-Xii·머스크 오른쪽)' 등도 자리했다. 트럼프는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과 친분이 깊고, 평소 UFC 경기 관람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FP 연합뉴스 |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 인플레이션에 불을 붙일 것이란 전망에 미국의 소비자 심리는 이미 악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발표된 미시간대의 4월 소비자 심리지수(낮을수록 비관적)는 전월(57.0)보다 6.2포인트 하락한 50.8로 전문가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 공포가 극에 달했던 2022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상황이 악화하자 트럼프 정부 내에서도 급격한 관세 인상이 초래할 부작용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적잖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명 가상 화폐 투자자인 마이크 알프레드는 소셜미디어 X에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여러 CEO와 수차례 통화했다. 이후 그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관세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트럼프를 설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지금과 비슷한 관세 인상을 밀어붙였던 1기(2017~2021년) 때 트럼프와 대화해 아이폰·아이패드 같은 애플 제품을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빼는 데 성공했던 쿡도 당시의 경험을 살려 일찌감치 공을 들였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쿡은 지난 1월 트럼프 취임식 때 100만달러(약 14억2630만원)를 기부했고 최근엔 “미국에 향후 4년간 5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아이폰을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편에선 이날 주요 전자 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가 트럼프의 ‘미국 제조’ 구상이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의 시장 전문가들은 애플이 설령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든다 하더라도, 생산 원가가 치솟아 소매가가 현재의 3배 수준인 3500달러에 달할 것이란 분석을 쏟아냈다. 미국 내 숙련된 생산직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말한, ‘수백만 명이 작은 나사를 조립하는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은 현실과 상반된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일단은 높은 관세를 때린 후 국가·기업별 손익을 따지고 협상을 벌여 관세를 잇따라 유예·인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 2일 부과한 25% 상호 관세가 9일 발표된 유예 조치로 90일간 미뤄진 상태다. 트럼프는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 후 방위비 분담금 등과 연동해 한국과 관세 협상을 하겠다는 ‘원스톱 쇼핑’ 방침을 밝혔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앞으로의 관세 정책은 지금까지 트럼프가 밀어붙인 극단적 속도전이 아닌, 현실적인 중장기전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관세 변경 지침은 (국가별) 상호 관세를 면제한다고만 되어 있어, 중국에 대한 총 145% 관세 중 트럼프가 펜타닐 원료 유입을 문제 삼아 중국에 부과한 징벌적 성격의 20% 관세까지 전부 유예되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했고, 관세 정책을 담당하는 백악관·국제무역위원회(ITC) 등도 언론 문의에 즉각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상호관세
교역 상대국의 무역 장벽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부과하는 관세. 개념이 확립된 1930년대엔 상대국에 맞춰 관세를 낮추기 위한 취지로 사용됐다. 하지만 지난 1월 취임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 인상을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