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중국산 많다는 점 고려한 듯
"애플·삼성전자·HP 등에 수혜" 평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2019년 3월 6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인력정책자문위원회 첫 회의에 나란히 앉아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스마트폰, 컴퓨터 등을 제외하기로 했다. 상호관세가 부과될 경우 애플 아이폰 등의 미국 가격이 2배 넘게 폭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우려를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중국산 스마트폰'엔 관세 20%
수입품 통관절차를 담당하는 미국 관세국경보호국(CBP)은 11일(현지시간) '특정 물품의 상호관세 제외 안내'라는 제목의 공지를 통해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컴퓨터 프로세서, 메모리칩, 반도체 제조 장비 등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 품목에서 뺀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현재 중국에는 125%의 상호관세와 20%의 이른바 '펜타닐 관세'를 더해 총 14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한국 등 다른 국가에는 10%의 기본 상호관세를 부과 중이다. 여기서 상호관세가 빠지는 만큼, 앞으로 스마트폰 등을 미국으로 수입하는 경우 중국산에 대해서만 20%의 관세를 내면 된다.
이번에 면제된 제품들은 중국산 비중이 큰 것들이다. 지난해 미국이 해외에서 들여온 상호관세 면세 대상 제품의 총 수입액 가운데 중국산 제품의 비중은 26%였다. 특히 스마트폰은 중국산 수입액이 전체 수입액의 81%를 차지했다. 이번 조치에 따른 최대 수혜국이 중국이란 뜻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의 대(對)중국 관세 완화와 관련된 첫 신호"라고 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11월 20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애플 제조 공장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오스틴=AP 연합뉴스 |
'애플 살리기' 택한 트럼프
이번 조치는 상호관세 방침을 유지할 때 미국이 입게 될 손실이 이익을 훨씬 넘어선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첨단 제품 경쟁의 선봉장 격인 애플이 다름 아닌 미국의 관세 정책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결과로 분석된다.
애플은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이폰 대부분을 중국에서 생산해 들여오고 있다. 따라서 애플이 상호관세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그대로 반영할 경우 미국 아이폰 가격이 현재의 2.5배에 이를 수도 있었다.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애플의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애플 주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 11일까지 약 19% 떨어졌다. 미국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비싼 애플의 몰락은 미국 경제에 치명타가 된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재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스마트폰은 대체재가 없는 최고가 필수품이어서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감도가 높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스마트폰의 급격한 가격 인상은 가뜩이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에게 매우 불만스러운 일"이라고 짚었다.
"테크기업들에만 특혜"
이번 면제 조치의 수혜자는 애플과 삼성전자, 휴렛패커드 등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테크기업들만 '특혜'를 받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크리스 머피 연방 상원의원(민주·코네티컷)은 "트럼프에게 기부할 수 있는 기업, 로비스트를 둘 수 있는 기업에는 관세가 면제된다"며 "(관세 정책은) 미국의 일자리 회복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2,630만 원)를 기부하고, 미국에 5,000억 달러(약 713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애플과 트럼프 행정부 간 유착관계를 비꼰 것이다.
다만 이날 상호관세가 면제된 전자제품 관련 관세는 반도체 품목 관세에 포함될 예정이다. 미 상무부는 13일 "반도체 관세는 한 달 내, 의약품은 한두 달 내 발표될 것"이라며 "상호관세에서 빠진 전자제품은 반도체 품목 관세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