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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행 티켓 끊어볼까”...죽지 않고 돌아온 피카소, 그의 정신을 만나다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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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미술관 M+ ‘아시아를 위한 피카소’展
피카소 초기작 ‘한 남자의 초상’(1902). [홍콩 = 김유태 기자]

피카소 초기작 ‘한 남자의 초상’(1902). [홍콩 = 김유태 기자]


파블로 피카소의 위대함은 큐비즘(입체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 관념을 부정하고 늘 다음 행보를 스스로 기획해 실행에 옮겼던 피카소는 ‘자기 갱신의 마법사’였다. ‘청색시대’와 ‘장미시대’로 불리는 초기 화풍에서 아프리카 영향기, 큐비즘, 초현실주의, 추상, 그래픽 아트에 이르기까지 그는 부단히 자기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피카소는 21세기 현대미술에 이르러서도 ‘죽지 않는 정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초월성’이란 키워드로 살피건대 피카소처럼 파란만장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피카소의 예술정신을 한 자리에서 사유하는 귀한 전시가 홍콩의 대표 미술관 M+에서 개막했다. 7월까지 홍콩 여행이 예정된 미술 애호가라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전시 ‘아시아를 위한 피카소: 대화’ 전(展)이다. 프랑스 파리 소재 피카소미술관(MnPP)과 홍콩 시각예술의 총아인 M+가 공동 큐레이팅해 ‘아시아에서 이 정도 양질의 피카소 전시는 흔치 않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방문한 홍콩 서구룡지구 미술관 M+ 2층은 피카소의 불사의 유산을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1890년대 후반부터 피카소 말년(1973년 사망)인 1970년대 작품이 시계열로 흐르고,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작품들 앞에선 사진을 찍으려는 인파가 뒤엉켰다. 고공행진 중인 홍콩 물가를 반영하듯 입장료가 240홍콩달러(약 4만5000원)로 저렴하진 않았지만 피카소 걸작을 직접 눈앞에서 확인하려는 애호가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홍콩 M+미술관에서 개막한 ‘아시아를 위한 피카소: 대화’ 전(展)의 입구 모습. 중국 현대미술 작가 쩡판즈가 그린 피카소 초상화와 피카소의 생전 사진이 관객을 맞는다. [홍콩 = 김유태 기자]

홍콩 M+미술관에서 개막한 ‘아시아를 위한 피카소: 대화’ 전(展)의 입구 모습. 중국 현대미술 작가 쩡판즈가 그린 피카소 초상화와 피카소의 생전 사진이 관객을 맞는다. [홍콩 = 김유태 기자]


M+ 2층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붉은 상의를 입은 피카소의 초상 한 점이 관객을 맞는다. 중국 현대미술 거장으로 평가받는 쩡판즈가 2011년 그린 피카소의 얼굴이다.

세계의 정면을 노려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 붉은 원색을 이용한 색감은 피카소의 정열적인 심연 속으로 관객을 정위치시킨다. M+ 예술감독인 정도련 수석 큐레이터는 “세계 대중이 피카소 사후 5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그의 예술에 끌리고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입구에 들어서는 모든 관객에게 던진다.

피카소의 큐비즘 대표작 ‘죽은 새들’(1912). [김유태 기자]

피카소의 큐비즘 대표작 ‘죽은 새들’(1912). [김유태 기자]


초반부 전시 중 눈길을 끄는 피카소 작품은 정물화 ‘죽은 새들’(1912)이다.


이 작품에선 그의 대표적인 화풍이었던 큐비즘이 생생히 구현됐다. 큐비즘이란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의 위치를 고정한 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전통을 거부하고, 보는 자의 위치를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며 한 대상을 여러 시선으로 겹쳐 해체하는 피카소의 화법을 뜻한다. ‘죽은 새들’은 단일한 대상을 단일한 관점으로 보던 고정관념을 넘어 ‘작가의 새로운 눈(眼)’이란 화두을 던진 피카소 화풍을 증거 중이다.

큐비즘이 생생히 드러나는 또 다른 필람(必覽) 작품은 피카소의 또 다른 대표작 ‘도라 마르의 초상’(1937)이다.

도라 마르가 누구인가? 그녀는 한때 피카소의 연인이었고 그 자신도 화가이자 사진작가였다. 피카소가 도라 마르를 묘사한 이 작품에서 피카소는 2차원 캔버스에 3차원의 공간성, 그리고 4차원의 시간성을 동시에 담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피카소의 큐비즘 대표작 중 3점. 모두 1937년 작품으로, 왼쪽부터 ‘팔짱을 끼고 앉은 여인’, ‘도라 마르의 초상’, ‘뉘슈 엘뤼아르의 초상’. [홍콩 = 김유태 기자]

피카소의 큐비즘 대표작 중 3점. 모두 1937년 작품으로, 왼쪽부터 ‘팔짱을 끼고 앉은 여인’, ‘도라 마르의 초상’, ‘뉘슈 엘뤼아르의 초상’. [홍콩 = 김유태 기자]


피카소가 옛 연인 마리 테레즈를 그린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여인’(1937), 피카소와 교류했던 시인 폴 엘뤼아르의 아내 뉘슈 엘뤼아르를 그린 ‘뉘슈 엘뤼아르의 초상’(1937)도 ‘도라 마르의 초상’과 나란히 걸려 있다. 피카소의 붓끝에서 재현된 그녀들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창백해 보인다.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이번 피카소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에서의 학살’(1951)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유독 눈길이 가는 작품으로 전시장의 맨끝 마지막에 진열돼 있어 이번 피카소전의 피날레다.

임신한 여성과 아이들이 공포에 떨고 있고, 무장한 병력이 헐벗은 저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구도로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다. 사실 피카소는 공산주의자였고 이 작품은 자본주의 진영(연합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뤄 논란이 컸다. 하지만 진영을 굳이 구분하지 않더라도 ‘게르니카’로부터 이어진 피카소의 반전(反戰) 메시지는 이 작품에서도 선명하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유명한 작품 ‘1808년 5월 3일’(1814)을 오마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같은 설명도 작품 우측 하단에 소개돼 있다. ‘한국에서의 학살’을 21세기 들어 다시 오마주한 후대 작가의 2024년작 그림도 눈길을 끈다. 1982년생 일본계 영국 작가인 사이먼 후지와라는 피카소의 이 작품 구도를 고스란히 가져오면서, 이를 만화 형식으로 재변환했다.

무려 200년에 걸친 ‘대화’인 셈이다. 이번 피카소전에는 이처럼 ‘선배’ 피카소와 후배 작가들의 작품이 마치 도전하고 응전하며 대화하는 듯한 작품 배치가 많다. 전시 제목의 부제가 ‘대화’인 이유다.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에 영향을 준 ‘말 머리’(1937)도 전쟁의 참혹함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입을 한껏 크게 벌린 말이 하늘을 쳐다보며 공포에 떠는 모습을 그렸다. 말의 동요하는 눈빛은 작품 ‘게르니카’의 중앙부에 위치한 말과 표정이 같다.

전시관 출구에는 피카소의 생전 한 마디가 벽면에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예술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내가 지금까지 창조한 모든 것들은 오직 현재를 위한 것이었다(Art has neither past nor future. All I have ever made was for the present).”

피카소는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관람 후 3층 루프가든에서 홍콩섬의 거대한 빌딩 숲을 보는 것은 덤. 안성재 셰프의 그 유명한 레스토랑 ‘모수 홍콩’도 바로 M+ 3층에 있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홍콩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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