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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왜 부당한 투옥에 저항 않았나

조선일보 이수은, 독서가·‘느낌과 알아차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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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은의 고전노트] 크리톤

아테네 시민 법정에서 500인 배심원 투표로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에게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독배를 마셨다. 이 이야기는 허구고,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바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재판에서 죽음까지를 기록한 플라톤의 3부작 ‘변론’ ‘크리톤’ ‘파이돈’을 읽어야 한다. 이들은 각각 민주주의와 명예, 법치주의와 정의, 영혼의 불멸을 다루며, 그중 “악법도 법”의 출처로 거론되는 작품이 ‘크리톤’이다.

감옥에서 형 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에게 오랜 친구 크리톤이 찾아와 탈옥을 설득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탈옥이 정의롭지 못한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는데, 여기에 근대 실정법주의와 유사한, 가장 오래된 법철학의 한 관점이 엿보인다. ‘탈옥은 정의롭게 이뤄진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므로 정의롭지 못하다. 부당한 판결 때문에 탈옥하는 것은 법률과 조국에 보복하는 것이고, 이는 정의롭지 못하다.’ 그는 자신의 부당함을 해소하기 위해 보복하는 것, 그로써 조국과 법률에 해를 입히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수은 독서가·'평균의 마음' 저자

이수은 독서가·'평균의 마음' 저자

소크라테스의 관점은 당대의 대중적 상식적 정의관에 어긋났다. 고대인에게 정의는 응보, 즉 내가 당한 화에 응당한 보복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각은 중세까지 계속되어, 복수를 기사(騎士)의 권리로 인정했고, 보복의 절차로서 결투권이 보장되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재판에서 배심원들을 향해 변론하며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애쓰지 않은 것이 바로 자신이며, 추방령이나 벌금형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도 자신이었음을 명확히 한다.

그는 부당한 법에 순응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판결이 내려지지 않도록 시민들을 설득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한 아테네의 법률을 존중했을 뿐이다. 그것은 법치의 토대인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뢰의 표현이었다. 다수결과 법치는 민주정의 기본 도구지만, 민주주의를 상실한 법치와 다수결은 악법과 대중에 의한 독재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언제나 중요한 것은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좋은 정치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수은, 독서가·‘느낌과 알아차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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