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작가 완 찌라차이싸꾼, 'Listen to your mentors'. /한세예스24문화재단 |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실. 거대한 고릴라 두상이 비스듬히 놓였다. 태국 작가 임하타이 쑤왓타나씬의 작품이다. 인간의 머리카락으로 고릴라의 머리를 만들고, 뒷면은 물고기 비늘로 덮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 방콕의 쇼핑몰 옥상 동물원에서 ‘부아 노이(작은 연꽃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암컷 고릴라를 만났는데, 38년 뒤 이곳을 찾았을 때 여전히 갇혀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방치된 고릴라에서 먼 미래에 자연이 파괴되고 외롭게 남을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했다.
태국 작가 임하타이 쑤왓타나씬의 작품 ‘초승달 고릴라’가 전시장에 비스듬히 놓였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 |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이 부쩍 가까워졌다. 서울 강남 곳곳에서 태국과 인도네시아 현대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에선 미국·유럽 등 서구 작가들을 발빠르게 소개했지만, 그 외 지역 작가들은 비엔날레에서나 볼 수 있었다. 한국 미술 현장이 그만큼 폭넓고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한가람미술관 1·2 전시실에서 5일 개막한 ‘태국 현대미술-꿈과 사유’는 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24명의 작품 110점을 소개한다. 한세예스 24 문화재단의 일곱 번째 국제문화 교류전이다. 박일호 전시감독(이화여대 명예교수)은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지리적 중심지이고,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지 않아 문화적 전통과 다양성을 보존하고 있다”며 “여전히 국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자 인구의 95%가 불교 신자인 나라이지만, 태국 젊은 작가들 작품은 신화적·종교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태국에서 떠오르는 젊은 작가 줄리 베이커 앤 서머의 '해바라기'. 2년 전 작고한 할머니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 |
비 따끙 팟타노팟 작가가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 서있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 |
전시는 ‘꿈’과 ‘사유’ 두 섹션으로 구성됐다. ‘꿈’ 섹션에선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작품을, ‘사유’에선 중견 작가들이 사회·정치·환경 등 보다 깊이 있는 주제를 탐구한 작품들을 만난다. 20일까지. 관람 무료.
인도네시아 작가 그룹 트로마라마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청담동 송은 전시 전경. /송은문화재단 |
서울 청담동 송은에서는 인도네시아 작가 그룹 ‘트로마라마’의 한국 첫 개인전이 한창이다. 인도네시아 노동 환경을 꼬집는 실험적인 전시다. 영상,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등 20여 점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관계, 반복되는 노동을 환기시킨다. 5월 24일까지, 무료.
인도네시아 작가 마리안토 개인전 전시 전경. /지갤러리 |
인도네시아 중견 작가 마리안토의 국내 첫 개인전도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산업화와 오염, 자원 착취가 인도네시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발하는 ‘검은 풍경화’가 전시장을 채웠다. 작가는 캔버스 전체를 검정 아크릴로 덮고 표면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인간이 자연에 행한 폭력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12일까지, 무료.
미술시장 전문가인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한류가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고 한국인들도 동남아 여행을 많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섞이는 현상”이라며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미술 시장도 그만큼 넓어졌다. 덕분에 색감이 강렬하고 정치·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한 동남아 현대 작품들을 다양하게 국내서 감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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