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이 선고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각종 중대한 사건을 맡는 헌법재판소에 ‘재판관 공백’ 문제가 얼마나 큰 혼란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9인 완전체를 갖추지 못한 헌재는 대통령 탄핵사건을 눈앞에 두고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마비 상태’에 봉착할 수도 있었다. 법조계에서는 반복되는 재판관 공백 문제를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안이 접수됐을 때 헌재 재판관은 6명으로, 헌재법상 사건 심리가 가능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당시 헌재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6인 체제에서도 심리할 수 있게 해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심리 불가’ 사태는 겨우 막았다. 국회는 윤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후 서둘러 재판관 3인을 선출했으나 마은혁 후보자의 최종 임명은 기약 없이 밀렸고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막판까지 변수로 꼽혔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오는 18일까지도 탄핵심판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면 헌재는 ‘6인 체제’로 또다시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재판관 공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필요하다는 요구는 과거부터 있었다. 국회의 후임 재판관 선출 절차가 계속 지연되자 2012년 헌재에는 “재판관 공석 상태 장기화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헌재는 “국회는 공정한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을 위해 공석인 재판관의 후임자를 선출해야 할 헌법상 작위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2017년 대통령 몫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 지명이 약 10개월간 미뤄졌을 때는 헌재 재판관 전원이 ‘8인 체제’란 불완전성을 조속히 해소해달라는 취지의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재판관 공백으로 인한 헌재 파행을 막기 위해 ‘예비재판관’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예비재판관은 선출 절차가 지연되는 동안 비어 있는 재판관 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직무대행’ 재판관이다. 오스트리아·튀르키예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헌재는 이진숙 위원장 가처분 인용 결정문에서 “헌재법은 7명 이상이 출석해야만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직무대행 제도와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는 전무하다”며 그 필요성을 언급했다. 독일에서는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전임 재판관이 업무를 이어가는 ‘임기 연장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문·이 재판관 퇴임이 얼마 안 남은 시점까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평의가 진행되자 국회에서는 두 재판관이 후임 임명 전까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결정 정족수에 못 미치는 ‘6인 체제’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취지로, 독일의 ‘임기 연장 방안’을 빌렸다. 그러나 특정 성향의 재판관을 헌재에 오래 남기려고 일부러 후임 임명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부작용으로 꼽혔다. 헌법재판관 임기를 6년으로 명시한 헌법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구성 방식을 규정한 헌법 조항을 다시 매만질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헌법은 대통령이 재판관 3명을 지명하고 대법원장과 국회가 각각 3명씩 선출하도록 규정하는데,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를 들어 재판관 임기 만료 시점에 2주 이상 후임을 선임하지 않으면 임명권을 다른 기관으로 넘기도록 하는 등 개헌을 통해 재판관 선출·임명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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