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TV 이일용 기자] 서울 강남 개포주공 6·7단지 재건축을 둘러싸고 삼성물산이 조합에 보낸 공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12일 해당 조합의 입찰이 유찰되면서 조합장이 조합원들에게 발송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에 대한 삼성물산의 대응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오세철 대표이사 명의로 개포주공 6·7단지 재건축조합에 공문을 보내 조합 측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즉각 정정할 것을 요구했다.
삼성물산 “정정공지 안될 경우 법적 조치”…개포주공 6·7단지 조합장에게 공문
삼성물산이 보낸 공문에 따르면 조합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허위 정보를 안내함으로써 당사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 발생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정정 공지가 안 될 경우 관련하여 모든 법적 조치 등을 취할 수밖에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업계에서는 조합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예고한 공문 발송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갑의 지위를 갖고 있는 재건축 조합을 상대로 을의 지위인 건설사가 시정조치를 요청하고 미이행시 조합장에 대한 법적 초치를 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삼성물산의 공문에 개포주공 6·7단지 재건축 조합장은 “악의적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답답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법조인, 기업 임원, 고위 공직자 등 조합원을 중심으로 맞소송을 진행하려는 기류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오세철 사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야인 오세철이 우리 조합의 맞소송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입찰할 것처럼 조합원들을 기망한 일에 대한 사과 없이 협박성 공문을 보낸 점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잠실우성1·2·3 입찰도 돌연 ‘발 뺀’ 삼성물산, ‘입찰 안 한 건 모두 조합 탓’
한편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수주 패턴이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입찰조건을 유리하게 이끌지 못하면 조용히 빠지던 예전과 달리 ‘조합 탓’으로 돌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개포주공6·7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송파구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에서도 입찰 마감 직전 참가를 철회하며 논란을 빚었다. 이 사업에서 당초 삼성물산과 GS건설의 2파전이 예상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GS건설 단독 입찰로 유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조합이 경쟁 입찰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물산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사비 증액과 조건 완화까지 받아들였지만 결국 삼성물산이 입찰막판에 철회했다. .
당시 해당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공사비를 평당 수십만원 올려 주고 사업 지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삼성물산 참여를 기다렸는데 입찰 철회로 심각한 피해만 입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송파구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에서 삼성물산은 입찰을 철회하면서 조합에 공문을 보내 '입찰 환경'을 문제 삼았다. 삼성물산은 지난 2월 28일 잠실우성 재건축조합에 보낸 공문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입찰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면서 "GS건설이 조합원을 상대로 한 개별 홍보를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했다"고 지적했다.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남 탓’으로 돌린 것이다.
해당 입찰 전 삼성물산은 조합 측에 모든 참여 건설사들이 조합원 대상 개별 홍보를 금지하도록 요청했고, 조합도 GS건설에 이를 준수하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그러나 GS건설이 이를 어겼다는 이유로 “공정한 경쟁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삼성물산의 설명은 업계에서도 설득력이 없다는 평이다.
삼성물산의 잇따른 강경 대응에 대해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우선 여러 사업장에서 연속으로 입찰 의향서를 냈다가 막판에 불참한 행보에 대해 적지 않은 조합들이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경쟁 입찰 무산으로 시공사 선정이 지연되고, 다시 입찰을 진행하거나 수의계약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합 측의 시간·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잠실우성1·2·3단지 조합 등에서는 “공사비까지 수십만원 올리는 등 요구조건을 맞춰줬는데 돌연 입찰을 포기한 것은 신뢰 문제로 직결된다”는 소리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권 한 재건축 조합장은 “삼성물산 비위 맞추기가 힘들다”며 “삼성물산이 입찰에 참여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 경쟁사들이 입찰하지 않는 데 돌연 발을 빼 버리면 사업지연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며 “삼성물산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 역시 “단순히 입찰을 포기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면서 조합과의 마찰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삼성물산의 태도를 우려했다.
더욱이 이러한 삼성물산의 강경책은 삼성그룹 전반의 기조와는 결이 다른 모습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취임 이후 그룹 차원에서는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자제하고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돼왔다.
실제로 삼성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보도 자제”를 요청하거나 내부적으로 조용히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이번 개포주공 6·7단지 건을 비롯해 재건축 수주전에서 정면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선택을 했다.
업계에서는 “그룹 수장의 지향점과 엇박자가 나는 오세철 사장의 마이웨이식 행보”라며 “시공사가 강남권 대형 조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법을 앞세워 힘을 과시하려는 모습은 결국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