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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홍역 어린이 또 사망…“백신 자폐 유발” 보건장관 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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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부 장관이 지난 2월13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에서 홍역이 확산하는 가운데 텍사스주에서 홍역에 걸린 어린이가 또 사망했다. 이 어린이 역시 예방 접종을 하지 않았다고 확인되면서, 백신이 자폐를 유발한다고 주장해온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 보건장관을 둘러싼 책임론이 높아지고 있다.



텍사스주 보건부는 6일(현지시각) 보도자료를 내어 “홍역 양성 반응을 보인 학령기 어린이가 러벅의 병원에 입원했고, 3일 사망했다”며 “홍역 폐부전”에 의한 사망이라고 밝혔다. 8살이었던 이 어린이는 예방 접종을 하지 않았고 기저 질환은 없었다고 했다. 지난 2월에도 이 지역에서 6살짜리 어린이가 사망한 바 있다. 당시 미 언론들은 미국 내 홍역으로 인한 사망은 10년 만에 처음 확인됐다고 전했다. 지난달에는 뉴멕시코주에서 홍역 양성 반응을 보인 성인이 숨졌으나, 그의 사인은 여전히 조사 중이다. 다만 그 역시 예방 접종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홍역이 집단 발병한 지역은 러벅에서 남서쪽으로 약 140km 떨어진 게인스카운티로, 개신교에 속하는 메노파 교도들이 사는 곳이다. 메노파는 아미쉬와 비슷하게 사회와 분리된 공동체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기술을 제한하고, 비폭력을 주장하며 남성의 리더십 등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텍사스에서 필수 백신 접종 하나 이상을 거부한 학령기 아동 비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방 접종을 거부하는 종교적 가르침은 없지만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메노파들 사이에서 예방접종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에이피 통신이 전했다.



텍사스주 보건부에 따르면 1월 말 이후 지난 4일까지 주 내 홍역 감염자는 481명으로 집계됐다. 엔피알(NPR)에 따르면 지난달 28일에서 이달 4일까지 엿새 동안 감염자가 81명 급증했으며 이 기간 16명이 입원했다. 미국 전역으로 범위를 넓히면 4월 초 현재 이미 지난해 전체 홍역 감염자의 두 배를 넘어섰다고 한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4일 올린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 3일까지 미국 22개주에서 모두 607건의 홍역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이 중 567건(93%)이 텍사스주와 인근의 뉴멕시코주, 오클라호마 등 집단 발병 사태와 관련된 것으로 분류됐다. 홍역 발병자의 72%가 19살 이하 미성년이었으며 97%가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거나 이력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고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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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7일 미국 텍사스주 세미놀레의 병원 주차장에 홍역 검사실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텍사스주에서는 지난 1월 말 이후 홍역 감염자가 481명으로 집계됐다. AFP 연합뉴스


미국 언론은 이번 홍역 집단 감염 확산의 배경에는 케네디 주니어 보건장관의 백신 회의론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케네디 장관이 지난달 초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홍역에 대구 간유처럼 비타민 에이(A)가 풍부한 건강 보조 제품을 대체 치료법으로 홍보한 것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지적이다. 케네디 장관은 인터뷰에서 홍역 감염자들이 비타민 에이를 섭취한 뒤 “기적적이고 즉각적인 회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후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5일 텍사스주 어린이병원 의사들을 인용해 `예방 접종을 받지 않은 어린이 홍역 환자들이 비타민 에이 독성으로 간 손상 징후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환자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홍역 사태에 대한 케네디 장관의 대응에 반발해 지난주 사표를 던지기 전까지 미 식품의약청(FDA)의 백신 책임자였던 피터 마크스 박사는 “이것은 그야말로 불필요한 죽음이며 비극”이라고 비판했다.



홍역 피해가 확산하면서 케네디 장관은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숨진 어린이 장례식을 찾아 부모를 만난 뒤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홍역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엠엠알(MMR·홍역·볼거리·풍진) 백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용히 이곳에 와서 유가족들을 위로”할 목적으로 갔다고 한 그는, 5시간 뒤 엑스에 홍역으로 숨진 두 어린이의 유족들과 찍은 기념 사진을 올려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방문에서 천식 치료제로 알려진 부데소나이드와 항생제 클래스로마이신을 써 홍역에 걸린 메노파 교도 어린이 300여명을 치료한 ‘특별한 치유자’ 의사 둘을 만났다고 소개했다. 그가 백신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입장을 선회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케네디를 보건장관에 앉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 임기 때인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한 상황에서 ‘살균제 인체 주입’을 언급해, 살균제를 복용한 미국인들이 실제 사망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케네디 장관이 여전히 사태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우려하고 있다. 케네디 장관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의사 출신인 공화당의 빌 캐시디 상원의원(루이지애나)도 이날 그를 에돌려 비판했다. 캐시디 의원은 엑스에 “모든 사람이 예방 접종을 받아야 한다! 홍역에는 치료법이 없다. 홍역을 앓아서 얻는 이익도 없다. 최고위급 보건당국자들은 또 다른 아이가 죽기 전에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썼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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