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에게 증인신문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윤석열 전(前)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최초로 자신의 탄핵 심판에 출석해 ‘셀프 변론’을 펼쳤다. 총 11회 변론기일 중 8차례나 법정을 찾았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직접 신문했고, 국회 측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직접 변론은 오히려 헌법재판소의 탄핵 소추 인용 결정의 근거가 됐다. 검찰총장 출신 법조인으로서의 자신감이 자신을 파면으로 이끄는 ‘자충수’가 된 셈이다.
이날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증언은 탄핵심판 결정문에 여러 번 언급된다. 윤 전 대통령은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김 전 장관에게 ‘비상계엄의 목적’에 대해 묻자 증인신문 종료 이후 별도로 답변했다. 그는 “계엄 선포는 야당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에게 호소해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날 윤 전 대통령은 ‘실패한 계엄’이라는 국회 측의 주장에 발끈했다. 윤 전 대통령은 “실패한 계엄이 아니다. 예상보다 좀 더 빨리 끝났을 뿐이다”라며 “이유는 제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군 철수를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변론을 하고 있다.[헌법재판소 제공] |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속 경고성·호소형 계엄이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2월 25일 최후 진술 때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경험한 비상계엄 트라우마를 야당이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 완전히 다르다.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며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들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악용해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경고성·호소형 계엄이라는 주장 자체가 12·3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즉각적인 해제를 전제로 잠정적·일시적 조치로 선포된 경고성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만으로도 계엄을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상황으로 인해 훼손된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선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헌재는 비상계엄의 실체적 요건을 구체화했다. 헌재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실제 발생해야 하고 ▷적과 교전 상태 또는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여야 하고 ▷목적은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 등 3가지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봤다.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의미가 대통령 개인의 주관적 확신이나 자의적 해석을 근거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부인한 셈이 됐다.
헌재는 경고성·호소형 계엄이라는 주장의 진정성도 의심했다. 헌재는 ▷국회 군·경 투입 및 국회 의결 방해 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침입 ▷정치인·법관 위치 추적 등이 윤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거나 관여한 행위로 판단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계엄 해제가 적어도 며칠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고 밝혔다. 계엄이 경고성이라는 점을 국무회의 구성원이나 군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단순히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포고령의 위헌성도 부정했다. 비상계엄 자체가 경고용·호소형이었기 때문에 실행 의사가 없었다는 취지다.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제가) 장관이 써오신 포고령을 보고 ‘포고령은 상징적인 것이니 상위 법규에 위배되고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도, 집행 가능성이 없으니 그냥 놔둡시다’라고 말했는데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다. 김 전 장관은 “말씀 하시니 기억이 난다”고 맞장구 쳤다.
같은 날 윤 대통령 측 송진호 변호사는 “증인(김 전 장관)이 대통령에게 포고령을 드리니 ‘국민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 통행금지 부분을 제외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비상계엄이 경고성·호소형 계엄이라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이 ‘통행금지는 시대에 안 맞는다. 국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라고 하시며 삭제를 지시했다”고 답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헌재는 “포고령이 집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야간 통행금지 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없다. 국민에 불편을 줄 우려가 있어 삭제했다는 것은 오히려 나머지 조항들의 효력 발생 및 집행을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