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계엄 불확실성 털어냈지만…상호관세·환율·내수 침체 등 풀어야 할 숙제 산적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사진공동취재단) |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지난 4개월여 간 이어진 대내 경제 불확실성이 가셨다는 평가다. 탄핵 선고 전까지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국내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하향 압력 우려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 불확실성 제거에도 한국 경제 앞날은 장밋빛이 아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 한국에 상호관세라는 날벼락이 떨어졌고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된 고환율도 우리 경제 성장을 가로 막고 있다. 성장의 또다른 한축인 내수 상황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자칫 탄핵 이후에도 사회적 갈등과 정쟁(政爭)에만 매몰돼 허송세월을 보냈다간 한국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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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일간 이어진 경제 불확실성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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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파면 선고에 따라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4개월간 우리 경제를 짓눌러온 경제 불확실성은 일부 걷혔다. 헌재 선고 전후 외환시장이 안정세를 보인 것도 탄핵 관련 불확실성 해소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원/달러 환율은 헌재 선고 전부터 급락하더니 4일 주간 거래 종가 1434.1원을 기록했다. 전날 주간 거래 종가(1467원) 대비 32.9원 급락했다.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치 리스크가 원/달러 환율을 30원 가량 끌어올렸다'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언급이 현실로 증명된 셈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지난 4개월 동안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나쁜 영향이 우리나라 경제에 반영이 됐기 때문에 (탄핵 선고) 결과에 승복하고 나간다면 불확실성이 제거된다는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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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치만은 않을 한국경제 앞날…'상호관세' 대응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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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사건에 대해 인용을 선고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전경./사진제공=뉴시스 |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다시 기지개를 켤 상황은 아니다. 당장 예상보다 더 센 미국의 상호관세 청구서가 날아든 상태다. 이른바 '최악국가'에 포함된 한국이 받아든 관세 고지서는 25%다.
미국은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 1·2위를 오르내리는 나라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1277억9000만달러로 7년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다. 전년 대비 수출액이 10.5% 증가하는 등 증가율도 가파르다.
하지만 상호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에 당장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은 500억 달러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증권은 미국이 20%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경우 올해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 전망치가 기존 5%에서 -(마이너스)3%로 8%p(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6836억 달러)을 고려하면 상호관세 부과에 따라 올해 수출액이 당초 예상보다 547억달러(7178억달러→6631억달러)로 떨어진다. 미국이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만큼 실제 수출 감소액은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경제성장률 하방 압력은 커졌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관세전쟁이 심화하는 비관적 시나리오 아래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이 1.4%로 기존 전망보다 0.1%p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 상황이 당시 비관적 시나리오보다 더 악화됐단 평가가 지배적인 만큼 올해 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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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이어 '환율'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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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
미국 정부가 곧 발표할 '환율보고서'도 골칫거리다. 1400원대가 뉴노멀인 된 환율 탓에 달러를 순매도하고 있는 외환당국 행보를 고려하면 환율조장국(심층분석국) 지정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미국 유일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미 무역흑자국이면서 정치 상황이 불안정한 한국을 자의적으로 환율조작국에 지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례도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미국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교역촉진법 상 요건에 부합하지 않았지만 거의 사문화된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들이밀었다.
한국은 교역촉진법 적용 이후 대부분 기간에 관찰대상국이었다. 2023년 하반기와 2024년 상반기 관찰대상국에서도 제외된 한국은 지난해 11월 관찰대상국에 재지정됐다. 미국의 직접적 경제제재를 받는 환율조작국과 달리 관찰대상국은 당장의 불이익은 없다.
반대로 환율조작국에 지정된 나라는 반기별로 환율보고서 제출을 요구받고 대미 무역흑자 폭도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제약이 발생한다. 한국처럼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는 수출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환율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다. 가령 미국이 상호관세를 부과할 때 환율을 절하시켜 관세 인상 효과를 무력화, 수출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을 쓸 수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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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도 문제…전문가들 "사회적 갈등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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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또 다른 한축인 내수 상황도 좋지 않다. 지역 내 고용과 내수를 끌어 올리는 주요한 역할을 해왔던 건설투자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심리 위축에 따른 소비 부진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재화소비를 의미하는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다. 지난해 연간 소매판매(-2.2%)가 신용카드 대란 사태가 있던 2003년(-3.2%) 이후 가장 큰 폭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소매판매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대선 과정에서 진영간 갈등이 심화, 심리 위축이 계속되면 내수 침체 골이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산불 피해 대응과 함께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도 새정부 출범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권이 민생경제를 위해 정쟁을 멈추고 경제 회복에 뜻을 모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강 교수는 "(탄핵 선고 이후)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난다든가 해서 사회적 혼란이 생기고 국론 분열이 심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시간이 지연될수록 경기 회복 불씨를 살리는 데 들어가는 초기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조기 대선을 치르더라도 추경은 여야가 합의를 해 편성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가장 중요한 건 민생쪽, 특히 소상공인 지원책인데 정치권이 말로만 싸우다가 3개월이 넘게 지났다"며 "정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 내수 회복과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위해 (추경을) 쓰는 건 여야 합의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10조원이든, 20조원이든, 30조원이든 빨리 추경을 편성해 집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세종=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세종=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김주현 기자 naro@mt.co.kr 세종=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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