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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가 두렵지 않나…트럼프의 ‘관세 도박’ [트럼피디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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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미국 백악관에서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발표한 가운데 미국 역시 물가 상승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 불과 1년 7개월 남은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고(高)물가로 흔들릴 민심이 두렵지 않은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무사히 물가 관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가 보인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일지 살펴봤다.

● ‘장바구니 물가’ 억제 전략

이날 미 무역대표부(USTR)는 홈페이지를 통해 ‘상호관세 산출 방정식’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한 논문을 인용해 “최근(트럼프 집권 1기 당시) 미국이 중국에 매긴 관세가 소비자가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USTR이 인용한 논문은 2021년 알베르토 카바요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 등이 발표한 ‘국경과 매장에서의 관세 전가: 미국 무역 정책의 실증적 증거’(Tariff Pass-Through at the Border and at the Store: Evidence from US Trade Polic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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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에 부과한 관세를 분석한 결과 20% 관세가 부과돼도 소비자가는 0.7% 올랐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도출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명시하지 않아 분석이 정교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논문은 최고 권위인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ER)의 하위 저널 ‘AER: 인사이트’에 게재된 6000단어 이하 분량의 단문 논문이다.

연구팀은 소비자가가 거의 오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유통 업체가 마진을 줄여 관세 부담을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통업계가 출혈경쟁을 통해 이를 무마했다는 것이다. 이어 “18개월간의 단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라는 한계가 있다. 관세가 장기간 유지된다면 소비자가 상승 폭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분석 기간은 2018년 7월에서 2019년 12월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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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이 뉴저지주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 때문에 장바구니 물가가 크게 올랐다고 비판하고 있다. 배드민스터=AP 뉴시스


연구의 신빙성과는 별개로 트럼프 행정부가 소비자가 상승 폭에 주목했다는 점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9개월 뒤에 치르는 중간선거 때까지는 장바구니 물가에 관세가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유통업계를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격을 올리려는 기업을 상대로 “탐욕스럽다”거나 “루저”라고 맹비난할 수도 있다.

● 기적적으로 성공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일자리와 제조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는 명분으로 통상 전쟁을 강행하고 있다. 실제로 제조업 노동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의 희망대로 물가 억제에 성공한다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산층 이상의 중도 성향 유권자가 주식시장 폭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더라도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주 등 노조 영향력이 강한 경합주에서 확실한 아군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는 셈법이 작용했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공식 지지했던 전미자동차노조(UAW) 역시 지난달 26일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에 화답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상호 관세를 발표하던 도중 미시간주의 자동차 노동자 출신 은퇴자 브라이언 페네베커를 무대 위로 불러 연설 기회를 주며 노조에 구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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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웃으며 미시간주의 자동차 노동자 출신 은퇴자 브라이언 페네베커(오른쪽)의 연설을 듣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보복 관세의 직격탄을 맞을 농업 유권자들의 표심 또한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을 통한 피해 보전을 약속한 상황이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앞서 2일 켄터키주 상원의원 두 명 모두가 트럼프 대통령의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발효에 제동을 거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이는 지역구 유권자의 반발을 의식한 상징적 조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 이후 더 이상 소비자가 인상을 막기 어려워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 이를 202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성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 플랜 B: 파월에 책임 전가

소비자가 상승 억제 전략은 도박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 사설에서 “트럼프의 상호관세 결정은 미국 경제사에서 최악의 자해 행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 관세는 미국 내 즉각적인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로 이어지고, 전 세계에 광범위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했다.

2일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상호관세 등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각종 관세 조치가 미국 소비자 물가를 2.3% 추가로 끌어올릴 것으로 분석했다.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 역시 미국의 올해 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를 넘길 것으로 관측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에 따르면 품목별 예상 가격 상승 폭은 의류 16.9%, 곡물 13.3%, 전자제품 10%, 자동차 8.4%, 과일 및 채소 4% 등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식료품과 공산품 전반의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결과 가구당 연간 평균 3800달러(약 550만 원)의 구매력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결국 2018년에 비해 더욱 전방위적인 관세 충격에 유통업계가 장기간 버티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한 석유 및 물류 파동, 자연재해 등의 외부 요인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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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연준 의장이 4일 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알링턴=AP 뉴시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물가 관리 실패의 화살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게 돌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생활비가 오른 것은 파월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방식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4일 트루스소셜에 “지금이 연준 의장 파월이 금리를 인하하기에 완벽한 시기”라며 “그는 항상 늦었지만 (내가 취임한) 2개월 만에 인플레이션이 내려간 지금, 그에게 이미지를 바꿀 기회가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리를 인하하라 제롬. 정치는 그만해라”라고 압박했다.

둘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1기 때부터 악연이 깊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에도 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파월 의장을 공격했다. 2019년 8월에는 “파월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에 누가 더 큰 적(enemy)인가?”라고 X에 적었다.

● 관세 충격 해결책은 트럼프뿐

문제는 관세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연준이 이를 금리로 잡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금리는 수요에 영향을 주지, 관세처럼 공급 측면의 충격으로 인해 발생한 인플레이션에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관세가 가져올 물가 충격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고물가 현상과 비슷하다.

당시 전 세계 물가가 급상승한 이유는 갑자기 천연가스를 많이 써서(수요 측면)가 아니다.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하는 천연가스를 대폭 줄였고, 이 여파로 운송비와 난방비 등 제조 비용이 상승해 제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처를 다변화했고, 미국 등이 비축유를 풀며 대응해 결국 물가를 잡았다.

그러나 트럼프발 관세로 인한 충격은 완충 수단이 달리 없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해 대체 공급망을 찾기도 어렵고, 만약 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긴다고 해도 높은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문제가 발생한다.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방법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물가 관리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물가의 방향키를 쥐게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게 된다.

18화 요약: 상호관세는 미국 물가를 즉각 끌어올릴 최악의 자해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트럼프 정부는 “20% 관세를 매겨도 소비자가는 0.7%만 오른다”는 근거가 부실한 주장으로 이를 일축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고통을 떠넘기거나, 물가 통제 실패의 책임을 파월 연준 의장에게 전가한 뒤,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정치적 책임을 피하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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