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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지브리잖아'…카톡 사진, 저작권 괜찮을까[AI오답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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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누가봐도 '지브리' 사진인데 왜
저작권법은 '아이디어-표현'의 분리
구체적 표현만 보호, 아이디어는 미보호
편집자주 실패를 살펴보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AI오답노트'는 AI와 관련한 제품과 서비스, 기업, 인물의 실패 사례를 탐구합니다.
카카오톡 열어보면 요즘 프로필 사진 바꾼 친구들이 많으시죠? 챗GPT를 이용한 '지브리풍 사진 만들기'가 가히 열풍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작품을 만든 곳이죠. 잔잔하고 따뜻한 동화풍의 그림체가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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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DALL·E3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쉽게 원하는 사진을 원하는 지브리풍으로 바꿀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달 25일 오픈AI는 '챗GPT-4o 이미지 생성(ChatGPT-4o Image Generation)’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오픈AI는 이용자들에게 '지브리풍 그림'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고,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도 본인의 X(옛 트위터)계정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바꿨습니다.

그 이후 지브리 스타일을 모방한 이미지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올트먼 조차 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지난달 27일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녹아내리고 있다"며 이용자가 몰려 GPU가 녹아내릴 정도로 서버가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브리 열풍의 이면 '저작권 침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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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스튜디오는 단 몇 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위해 몇 달을 넘게 작업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몬 막사이사이상재단


인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요. 지브리 열풍은 또다른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저작권 침해 논란’ 입니다.

미국의 로펌 '프라이어 캐시먼'의 파트너 변호사인 조시 와이겐스버그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픈AI의 AI 모델이 지브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으로 훈련을 받았는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만약 이런 식의 작품 사용이 동의와 보상 없이 이뤄지고 있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하야오 감독은 AI를 통한 애니메이션 작업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그는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AI가 그린 결과물은 실제 작업하며 만드는 사람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 완전히 역겹다”라며 “이런 기술들을 내 작품에는 절대로 쓰지 않을 것이다. 이건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애니메이션은 연필과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그 무엇”이라며 기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한 바 있죠.

지브리 스튜디오는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입니다. AI로 지브리 화풍을 모방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라는 주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러나 ‘저작권 침해’라고 쉽게 결론 내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지브리’ 인데…왜 저작권 침해로 단정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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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우주전쟁' 포스터.

저작권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입니다. 쉽게 말해, 저작권은 구체적인 '표현'만을 보호하고 그 기반이 되는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죠.

예를 들어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지구인의 이야기’라는 아이디어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구체적인 작품, 가령 어벤져스(2012), 우주전쟁(2005), 인디펜던스데이(1996) 같은 영화의 구체적인 대사, 장면, 캐릭터 등은 저작권으로 보호됩니다.

그런데 화풍이나 스타일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예술적 스타일이나 화풍은 '아이디어'에 가까워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브리 스튜디오의 일반적인 화풍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저작권 침해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겁니다.

박애란 한국저작권위원회 변호사는 “저작권법상 스타일이나 화풍 같은 아이디어 영역은 저작물로 보호되지 못하고 표현이 보호된다는 원칙이 있다"며 "저작권법상 보호받지 못해도 부정경쟁 방지법 같은 다른 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습니다.

현행 저작권법의 ‘아이디어-표현 이분법’ 논리는 ‘저작권의 보호’ 그 자체가 아니라, ‘보호를 통한 확산과 발전’에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까지 보호한다면 소수가 너무 넓은 창작 영역을 독점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죠.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다른 창작자들이 기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고, 문화자원과 지식이 자유롭게 공유, 확산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작권법은 ‘혁신을 장려하면서도 창작자의 노력에 보상한다’하는, 일종의 균형 찾기라 볼 수 있습니다.

나이키 '점프맨'은 모방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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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점프맨’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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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점프맨’의 모티프가 된 사진. 사진작가 렌트미스터가 1984년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찍은 사진이다. 미 법원 제출자료


화풍 모방과 관련된 저작권 분쟁의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점프’ 사진은 아주 유명하죠. 나이키는 이 점프를 브랜드 로고로도 만들었습니다. 해마다 수십억 달러를 버는 핵심 브랜드가 됐죠. 그러나 저작권 소송에 휘말리고 맙니다.

사진작가 렌트미스터(J. Rentmeester)는 나이키의 ‘점프맨’ 로고가 자신이 1984년에 조던을 모델로 찍은 사진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나이키의 점프맨 로고가 렌트미스터의 사진에 영감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구체적인 표현 방식(두 다리의 각도, 배경, 조명 등)이 충분히 다르다”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합니다.

2003년 ‘해파리 유리조각’ 사건도 있습니다. 유리공예가 리처드 사타바(Richard Satava)는 실제 해파리를 유리 속에 넣은 듯한 입체적인 유리조각품을 만들었습니다. 또다른 예술가 로리(Lowry)는 사타바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유사한 작품을 만들었죠. 사타바는 로리를 저작권 침해로 고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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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바의 해파리 유리공예 작품. 이후 유사한 유리공예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저작권 소송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아트저널


법원의 판단은 이번에도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였습니다. 법원은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해파리)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제한된 저작권 보호만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생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창작적 표현보다는 아이디어나 사실에 가깝다고 본 것입니다. 투명한 유리 안에 해파리를 묘사하는 방식은 해파리의 자연적 특성(반투명함, 물속에서 부유하는 모습 등)을 표현하기 위한 논리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라 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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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스v쿤 : 로저스의 1985년도 작품(왼쪽)과 쿤스의 1988년도 작품.


반대로 저작권 침해로 인정된 사례도 있습니다. 1992년 '로저스 대 쿤스(Rogers v. Koons)' 사건이 유명합니다. 사진작가 아트 로저스가 찍은 흑백 사진을 조각가 제프 쿤스가 '퍼피스 스트링(String of Puppies)'이라는 조각 작품으로 변형했죠. 쿤스는 이것이 “패러디이자 예술적 변형”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저작권 침해로 판결했습니다. 쿤스의 작품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로저스 사진의 구체적인 표현 요소(포즈, 구도, 표정 등)를 너무 많이 복제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법적 기준은 없지만…기술과 창작의 공존은 항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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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통한 이미지 생성은 저작권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결론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법원은 일반적으로 스타일이나 화풍 자체보다는, 특정 작품의 구체적인 표현 요소가 얼마나 복제되었는지를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게다가 AI를 통한 화풍 모방과 관련된 저작권 판례는 충분히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법적 판단 기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죠.

다만 저작권 침해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 저작권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법적 회색지대에 기약없이 머무르기보다는, 현행 저작권법의 핵심(아이디어-표현의 분리)을 염두에 두고 대응해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기술이라도 저작권법의 기본 원칙은 존중해야 합니다.

IT업계에는 저작권으로 망한 업체가 수두룩합니다. 음원 산업에 파란을 일으킨 1999년 냅스터(Napster)가 대표적이죠. 냅스터는 사용자들이 MP3 음악 파일을 직접 교환할 수 있는 P2P(Peer-to-Peer) 서비스였습니다.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수천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합니다. 그러나 저작권 침해 판결로 파산하고 맙니다. 저작권과 같은 법적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혁신적인 서비스도 망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죠.

기업들은 저작권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한편 창작자들과의 공생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는 기술 혁신과 창작자 보호가 공존하는 곳일 테니까요.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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