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완전히 일치된 8대0 탄핵 인용인데, 도대체 왜 한 달이나 걸렸는지 의문입니다.” (현직 부장판사 A씨)
윤석열 대통령이 8대0 만장일치로 파면됐다. 5가지 탄핵 소추 사유도 모두 인정됐다. 만장일치의 만장일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기일을 지정하지 않으면서 ‘5대3 데드락설’이 흘러나오고, 인용 결정을 해도 ‘반대의견’이 담길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헌재는 지난 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기일을 열고 윤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재는 계엄 선포 ▷포고령 1호 발표 ▷군대·경찰 동원한 국회 활동 방해 ▷영장 없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관 체포 시도 등 5가지 소추 사유가 모두 중대한 위헌·위법에 해당해 파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해도 ‘깔끔한’ 결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등 법 위반은 인정되지만 대통령직을 파면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 탄핵이 기각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총 4개의 탄핵 소추 사유 중 1개의 사유만 중대한 위헌·위법으로 인정돼 탄핵이 인용됐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입장해 있다. [연합] |
법조계에서는 결정문 말미에 담긴 보충의견을 주목한다. 결정문 전문을 읽어본 한 현직 판사 A씨는 “형사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사실 관계 인정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형사소송법 준용 관련해 보충의견을 보니 절차적인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김형두·이미선 재판관과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형사소송법의 전문 법칙을 어떻게 적용할 지를 두고 대립되는 보충의견을 냈다. 보충의견이란 법정의견과 결론을 같이 하되 이유를 더할 때 기재하는 의견을 말한다. 탄핵 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 즉 적당히 수정해 적용하도록 되어있는데 전문법칙을 얼마나 또 어떻게 적용할 지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다.
먼저 김형두·이미선 재판관은 완화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김형두·이미선 재판관은 “탄핵 심판에 전문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헌재가 다수의 증인을 채택해야 해 절차의 장기화, 탄핵심판 절차의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이 내란 수사 중 확보한 공범·참고인의 신문조서, 진술조서를 부인해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봤다. 당시 변호인이 동석하는 등 진술 과정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 회의록도 증거로 인정했다.
김복형 헌법재판관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입장해 있다. [연합] |
반면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앞으로는’ 엄격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부인하는 경우에는 진술 당사자를 불러 반대신문을 하는 등 추가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국회 회의록도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대통령 탄핵 결정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중대하다. 탄핵 심판 절차에서 피청구인에게 반대신문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신속성의 요청에 반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앞으로는 형사소송법상 전문법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검찰 조서가 없어도 영상 증거, 탄핵 심판 증인 신문 등을 충실히 해서 사실관계 확정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탄핵 인용 결정에 큰 이견은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평의 초기 절차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가 길어져 사실관계 확정이 늦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초기 논의가 늦어진 데다 (3월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항소심도 있었으니 ‘기다려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2020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고 검찰의 증거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기조가 확립되고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처럼 바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며 “‘앞으로는’이라는 단서를 달았는데 이번 사안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던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어 “헌재의 판단은 ‘대통령’ 거취를 결정하니 이재명 대표 항소심 선고 일정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윤 대통령 파면이 이 대표의 항소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조심한 것 아니냐”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기재한 보충의견에 주목하는 의견도 있다. 정 재판관은 탄핵소추안이 부결될 경우 다른 회기 중에도 다시 발의하는 횟수를 제한하는 내용의 입법을 제안했다. 임시회의를 열어 회기만 달리해 탄핵소추안을 발의, 소모적인 정쟁이 벌어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탄핵소추안 ‘발의’에 대한 보충의견은 ‘각하’ 근거도 충분히 될 수 있다”며 “국론 분열이 심해 각하 의견을 내는 대신 보충의견으로 타협할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