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때도 겪었던 외교 난맥상
관세폭탄, 주변국 관계 혼선 등으로 재현
흙투성이 외교안보 정상화 최우선 과제
2017년 5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을 들으며 청와대 관저에서 맞는 첫 주말 아침 잠을 깼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방치됐던 외교안보 공백의 값을 묻는 고지서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힘겨루기 불똥이 본격적으로 신생정부를 향해 날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이는 불똥이었을 뿐, 진짜 큰불은 일찌감치 우리 외교안보의 심장 근처를 태우고 있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이후 수개 월 잠잠해졌지만, 정작 우리는 동맹 미국과 한동안 껄끄러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개명 전의 최서원)의 국정농단을 방임하면서 대통령 탄핵국면을 맞았던 2016년 연말부터 19대 대선까지, 대한민국 외교와 안보환경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누가 대한민국 외교의 컨트롤타워에 올라 있는지 모를 혼란 자체였던 터라 북한은 물론 주변국들과의 관계 설정, 약속 이행 등이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대통령 탄핵으로 어수선한 사이 백악관 주인이 당대 최고의 스트롱맨인 트럼프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 또한 당시 혼란의 불씨를 키웠다. 당선 전부터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주한미군 비용에 비하면 미국이 얻는 게 뭐냐(NBC 인터뷰)'는 등 한국 경시 발언을 일삼던 트럼프는 급기야 문 대통령 취임 수일 전 기존 합의를 무시하면서 "한국이 사드배치 비용(10억달러)을 지불하는 게 적절하다"고 일방 통보해버렸다.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이 허겁지겁 '기존 합의 재확인' 의사를 밝히면서 불을 껐지만 미국 정부가 리더 없는 동맹을 얕잡아본, 우리로선 굴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관세폭탄, 주변국 관계 혼선 등으로 재현
흙투성이 외교안보 정상화 최우선 과제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4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파면 관련 중계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2025.04.04 |
2017년 5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을 들으며 청와대 관저에서 맞는 첫 주말 아침 잠을 깼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방치됐던 외교안보 공백의 값을 묻는 고지서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힘겨루기 불똥이 본격적으로 신생정부를 향해 날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이는 불똥이었을 뿐, 진짜 큰불은 일찌감치 우리 외교안보의 심장 근처를 태우고 있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이후 수개 월 잠잠해졌지만, 정작 우리는 동맹 미국과 한동안 껄끄러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개명 전의 최서원)의 국정농단을 방임하면서 대통령 탄핵국면을 맞았던 2016년 연말부터 19대 대선까지, 대한민국 외교와 안보환경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누가 대한민국 외교의 컨트롤타워에 올라 있는지 모를 혼란 자체였던 터라 북한은 물론 주변국들과의 관계 설정, 약속 이행 등이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대통령 탄핵으로 어수선한 사이 백악관 주인이 당대 최고의 스트롱맨인 트럼프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 또한 당시 혼란의 불씨를 키웠다. 당선 전부터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주한미군 비용에 비하면 미국이 얻는 게 뭐냐(NBC 인터뷰)'는 등 한국 경시 발언을 일삼던 트럼프는 급기야 문 대통령 취임 수일 전 기존 합의를 무시하면서 "한국이 사드배치 비용(10억달러)을 지불하는 게 적절하다"고 일방 통보해버렸다.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이 허겁지겁 '기존 합의 재확인' 의사를 밝히면서 불을 껐지만 미국 정부가 리더 없는 동맹을 얕잡아본, 우리로선 굴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례는 기능을 상실해 버린 박근혜 정부 말기, 미국의 '사드 비용 통보' 사실을 우리 당국이 뭉개 버렸던 후과이기도 했다. 리더십이 무너져 외세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하며 겪은 탄핵정국의 가시밭길은 험난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대한민국은 2017년과 놀랍도록 닮은 상황에 놓였다. 미국우선주의의 칼끝을 날카롭게 갈아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탄핵으로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며 빚어진 외교안보 공백. 8년 전과 동일한 두 개의 조건이 조성되는 동안 우리는 미국의 민감국가 리스트에 오르는 줄 몰랐고, 터무니없는 상호관세 타깃이 됐음에도 제대로 이유를 따져 묻지 못했다. 상대가 없다며 미국 국방장관은 방한을 취소했고, 그러는 동안 미 조야에선 주한미군을 유사시 대만으로 보낼 수있다는 분위기가 견고해졌다. 탄핵정국이 길어지며 유독 한미관계만 꼬여버린 것은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협상이 무르익었음에도 대러 관계에 변화를 꾀하지 못했고, 무역전쟁으로 우군이 급해진 중국에 우리의 레버리지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한일수교 60주년인 올해가 3분의 1이나 지나고 있건만, 이시바 정부로부터 과거사 관련 어떤 유화 메시지도 끌어낸 게 없다.
헌법은 4일 유사 이래 두 번째로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리더십 결손은 늘 혼란을 불러냈지만, 이날부터의 리더십 부재는 시한부이기에 견딜 수 있고 희망을 품게 된다. 케네디 미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갑자기 리더가 된 린든 존슨은 당시의 미국을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소떼'라고 표현했다. 그가 국민 앞에 내세웠던 리더십은 '말을 타고 직접 늪으로 들어가 소떼를 진흙 밖으로 끌어내겠다'는 것이었다. 큰 위기는 지났지만, 우리의 외교안보는 아직 늪 속에 잠겨 있다. 60일 뒤 국민의 선택을 받고 리더가 될 이는, 불법계엄 후 123일간 흙투성이가 된 대한민국 외교안보 체스판을 최우선으로 말끔히 정렬해 놓을 의무가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양홍주 논설위원 yanghong@hankookilbo.com




























































